배우 이지훈은 과거 불안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또래들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때 자신만 제자리를 맴도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연기 수업, 아르바이트에 이어 신문 배달까지 하면서 '내 인생이 어떻게 되려고 이럴까'라는 말을 수없이 곱씹었다. 꿈은 있는데 미래는 불투명했다. 이지훈이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는 승진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지훈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영화 '빈틈없는 사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빈틈없는 사이'는 방음이 안 되는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게 된 뮤지션 지망생 승진과 피규어 디자이너 라니의 로맨스를 그렸다.
'빈틈없는 사이' 속 승진은 꿈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친구들에 비해 뒤처지는 듯한 느낌에 아파한다. 이지훈은 감독에게 과거의 자신이 승진과 참 닮았다고 말했다. "23~27살 때 아침의 지하철역에서 대학교에 가거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또래들을 봤다. 그때 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항상 불안했다"는 게 이지훈의 설명이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간다는 게 창피하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꿈이 있는데 항상 똑같은 사이클로 아침에는 카페에 갔고 1시부터 3시까지는 연기 수업이 있었다.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그리고 그게 끝나면 신문 배달을 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또래들을 보면서 '내 인생이 어떻게 되려고 이럴까'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이지훈은 자신의 과거와 닮은 승진에게 유독 큰 애정을 품게 됐다.
이지훈은 2012년 방영된 JTBC '메이드 인 유'에 출연했던 경험도 있다. '메이드 인 유'는 차세대 아이돌을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당시를 회상하던 이지훈은 "소녀시대 춤을 추고 노래도 불렀다. 그런데 3차에서 탈락했다. 노래를 굉장히 떨면서 불렀는데 승진의 마음이 그랬을 듯하다"고 말했다. '빈틈없는 사이' 속 승진의 열창 장면은 작품의 볼거리 중 하나다. 이지훈은 자신이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음을 소화한다고 해서 노래를 잘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방송에서 많이 들었다. 진심을 다해 부르면 그게 잘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지훈은 허름한 집에서 사는 승진의 설정을 생각하며 그가 마른 캐릭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물에 대한 깊은 고민을 이어가던 그는 JTBC '싱어게인' 출신 가수 이승윤의 겉모습을 참고하기로 결심했다. 이지훈은 "내가 '싱어게인' 본 방송을 봤는데 이분이 승진의 모습과 비슷하겠다는 느낌이 왔다. 피부를 조금 태우려고 했다"고 말했다. 승진이 버스킹을 많이 다녔을 듯하다고 생각했단다. 화장은 거의 하지 않았다. 눈썹을 그리지 않았고 베이스만 대충 발랐다. 피부가 좋아 보이면 안 될 듯해 다소 거칠게 연출했다. 승진과 라니(한승연)가 붙을 때만큼은 조금 튀더라도 꾸며진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관객들의 연애 세포를 말랑하게 만들기 위한 이지훈과 감독의 노력이었다.
한승연과 이지훈은 또 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이지훈이 연습생이었을 때 한승연이 같은 소속사 소속의 그룹 카라로 활동 중이었다. 이지훈은 "난 카라라는 존재를 알았다. 그런데 승연이는 연습생들을 모르기 때문에 나만 일방적으로 봤다"면서 미소 지었다. 이지훈과 한승연은 시간이 흘러 '빈틈없는 사이'로 재회했고 작품을 통해 가까워졌다. 이지훈은 한승연에게 '골프 배워라' '밥 사줘라' '밥 먹자' 등의 연락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승연이가 밝고 웃음도 많다"고 친분을 드러냈다.
승진과 라니는 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더 잘 알게 된다. 벽 너머의 상대가 라니가 아니었더라도 승진은 로맨스를 꽃피울 수 있었을까. 이지훈은 "라니가 아니더라도 힘들었던 일을 누군가에게 진솔하게 고백할 수 있다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동성과는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듯하고 이성이라면 호감을 품게 될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이 외롭지 않나. 갈수록 더 팍팍해지고 사람들끼리 서로 헐뜯는다"며 속상함을 내비쳤다. 이지훈은 실제로 승진처럼 벽을 보며 이야기하기도 했단다. 그는 자신을 더욱 사랑해 줄 수 있는 말들을 계속했는데 그 과정에서 위안을 얻었고 연기에도 도움을 받았다.
이지훈은 '빈틈없는 사이'에 대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내가 연기를 하고 싶게끔 만들어준 작품"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빈틈없는 사이'의 승진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는 큰 열정을 쏟아냈다. 오전 5시까지 회의를 하다 2시간 잔 뒤 촬영한 적도 있다. 작품과 관련해 "많은 분들이 보러 와 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힌 그는 "보러 와주실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지훈과 한승연의 로맨스는 올여름 관객들의 마음을 한층 후끈하게 만들어줄 전망이다.
'빈틈없는 사이'는 지난 5일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