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상식·양심의 회복과 민주당
원래 진보는 용기 있게 시대와 시민을 반걸음 앞서가며 영감을 준다. 반면에 보수는 반걸음 뒤에서 신중하게 호흡을 고르며 자기 몫을 다한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당은 용기를 가진 리더십을 잊어버렸다.
언제나 그런 건 아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국내외적으로 새로운 정치 질서를 열었다. 심지어 지구와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 민주주의를 그 당시 이미 주창했다. 그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깨어 있는 시민의 참여와 동북아 균형 국가론이란 새로운 비전을 열었다.
이들 두 대통령 시절은 언제나 미국 등 서구의 앞서가는 실험에 대한 연구와 적용으로 분주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영국의 제3의 길을 연구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제의 견제와 균형을 연구했다.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은 용기 있는 리더십을 잃어버렸고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에 관심이 없다. 나는 오늘날 민주당의 문제가 여전히 운동권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에 반만 동의한다. 정치가이기 이전에 운동가의 심장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대신에 진보의 가치가 부재한 외부의 극단적 선동가들과 그들의 대변자들이 당을 좌지우지하려 한다. 그래도 미국 민주당이 트럼프에게 2016년 패배한 후 느리지만 성찰을 거듭하며 선거에서 득점하고 있는 것과 극명히 대조된다.
리더십 연구의 새 장을 연 브레네 브라운의 '리더의 용기'는 그 차이의 단서를 4가지 측면에서 제공해 준다. 이는 오늘날 한국의 민주당이 최소한 미국 민주당 정도로라도(사실 이는 매우 높은 목표이다!) 닮아가기 위한 기본 방향이기도 하다.
첫째, 브라운은 취약성을 인정하는 리더십을 주장한다. 이는 자신의 부족함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과 공감대를 가지는 걸 말한다. 하지만 현재의 민주당은 온몸에 강한 갑옷을 둘러싼 채 자신들이 믿은 절대적 진리를 내리꽂는 계몽주의 정당으로 인식되곤 한다. 자신의 견해와 조금만 다르면 쉽게 적폐이거나 토착 왜구가 된다. 반면에 미국 민주당은 2016년 대선 패배 후 이 계몽주의 태도로 트럼프 진영 시민을 가르치려는 어리석음을 많이 버렸다.
둘째,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는 리더십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견제와 균형 등의 공화주의 및 개인의 존엄 등 자유주의 가치보다는 그 국면마다 다수파의 당파적 이익이 우선한다. 적법한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정신을 쉽게 버리고 위성 정당과 꼼수 탈당 등을 버젓이 자행한다. 반면에 미국의 민주당은 트럼프의 비자유주의와 싸운다는 핑계로 그를 따라가기보다는 철저히 민주당다운 가치와 적법한 절차에 근거하여 투쟁한다.
셋째, 신뢰의 리더십이다. 그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부단히 높여가며 이에 충실하고자 최대한 진심을 다하는 것은 특히 진보의 가장 기본 덕목이다. 하지만 영원히 조국 사태의 덫에 빠진 오늘날 민주당은 내로남불의 브랜드가 고착화되어 중도층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반면에 미국의 민주당은 경제 정책 등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이긴 해도 도덕적 가치, 진실성, 성실성 등을 아직 자신의 브랜드로 가지고 있다. 그들이 저질로 가도 우리는 품위를 지킨다는 미셸 오바마의 명언은 여전히 미국 민주당의 정신이다.
넷째,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울 줄 아는 리더십이다. 한 사회의 진보는 오직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으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민주당은 실사구시적으로 패배한 선거를 평가하고 혁신하고자 하는 문화가 사라져 버렸다. 진보의 주요 지지층이었던 2·30대 유권자 내부의 극심한 분열을 어떻게 극복해 선거에서 승리할지 별로 관심이 없다. 반면에 미국의 민주당은 2016년 대선 패배와 2020년 박빙 승리 이후 과학적 반성에 기초하여 승부처에서 백인 노동자 계급을 다시 찾아오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결국 민주당은 다시 대담한 용기와 인간적 가치, 그리고 매혹적인 실험정신을 가진 리더십이 절실하다. 과연 그들이 어느 시점에 이러한 반성과 비전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한국의 야당이 반걸음 앞서야 여당도 변화한다는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