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 소리가 박자라도 맞춘 듯 리듬감 있게 울려퍼진다. 시끄러울 법한 재봉틀 소리를 이렇게 들으니 마치 악기와도 같다. 벽에 걸린 알록달록 실뭉치도 그러고 보니 콜라주 작품처럼 보인다. 그렇게 ‘재봉틀의 마법’에 취해서 감탄하는 사이, 30년 베테랑의 손길 아래 두툼한 패딩 한 벌이 어느새 뚝딱 완성된다.
옷을 살펴보던 미싱사 김혜정씨가 흡족한 듯 생긋 웃음짓는다. “디자인이 아주 잘 나왔네.”
지난달 22일. 밖은 무더위가 한창이었지만,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의류기업 신티에스의 샘플 제작실은 벌써 혹한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옷 견본은 베트남과 에티오피아 직영 공장으로 건너가 완제품의 뼈대가 된다. 신티에스가 만든 옷은 뉴발란스, 마무트, 라 스포르티바, 살레와 등 들으면 바로 아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의 상표를 달고 전 세계에 팔린다.
신티에스는 아웃도어 의류 전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이다. 스포츠복부터 등산복, 스키복, 모터사이클복, 사냥복, 텐트까지 기능성 제품을 두루 만든다. 자전거 의류 NSR과 캠핑 의류 울프라운치 등 자체 브랜드도 갖고 있다.
지난해 총 매출액은 2,220억 원. 2020년(1,108억 원)보다 2배나 뛰었다. 신금식 대표가 2004년 동생에게 빌린 5,000만 원으로 창업해 20년도 안 돼 일군 성과다. 2013년 서울시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 선정, 2017년 고용노동부 청년친화 강소기업 선정, 2020년 금탑산업훈장 수상 등 내실도 알차다.
고객사는 대부분 10년 넘게 인연을 맺은 단골들이다. 끈끈한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 신티에스는 잡기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두 마리 토끼, 품질과 가격을 모두 거머쥐었다. 숙련공이 많은 베트남 공장(5,600명)은 고기능성 고가 의류 제작 위주로, 에티오피아 공장(5,800명)은 소품종 대량 생산 의류 위주로 시스템을 이원화한 덕이다. 신 대표는 “우리만큼 원칙을 지켜 잘 만드는 곳은 없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신티에스의 진가가 드러난 계기는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고객사들은 국경이 막히자 현지를 방문하지 않아도 품질을 보장해 주는 신티에스에 앞다투어 일을 맡겼다. 에티오피아 공장은 2021년 외화 600만 달러(약 79억 원)를 벌어들이며 전년 대비 70% 이상 성장했다. 그해 에티오피아 섬유·의류 부문 수출 3위가 신티에스 공장이었다. 에티오피아는 에너지 90%를 수력 발전으로 생산하는 에너지 청정국이라, 친환경·윤리 경영을 중시하는 미국·유럽 업체들이 특히 주목하는 생산지다.
하지만 신 대표는 OEM에만 회사의 미래를 걸어둘 순 없었다. 외부 주문이 안 들어오면 공장 직원들에게 일거리를 줄 수 없고, 일거리가 없으면 회사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 숙련 직원들이 떠나기 때문이다. 자체 상표 NSR은 그런 고민 속에 탄생했다. “스스로 주문자가 되자”는 것이다. 홍보마케팅 한 번 안 했는데 “안 입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입어본 사람은 없다”며 입소문이 났다. 단숨에 고가 수입브랜드를 대체하며 자전거 의류 1위 브랜드로 우뚝 섰다. 지난해엔 매출액 120억 원을 찍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환경에 대한 책임감도 커졌다. 의류산업은 태생적으로 폐기물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출시한 브랜드가 울프라운치다.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를 재활용해 캠핑 의류와 텐트를 만든다. 업사이클링 제품이지만 원단 자체가 워낙 고급이라 반응이 좋다.
신티에스가 지나온 길엔 드라마 같은 순간들이 많았다. 신 대표는 18년간 몸담았던 의류업체에서 나와 회사를 차리면서 ‘거래처 빼앗는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전 회사 거래처엔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페인 고객사가 먼저 찾아와 의류 납품을 주문하고 사업 자금까지 투자했다. 2006년 베트남 공장 부지를 인수할 때도 현지인 공장주는 “인간다운 일터를 만들겠다”는 약속 하나만 믿고 장기분할납부 조건으로 땅과 공장을 넘겼다.
신티에스는 그 약속을 지켰다. 베트남의 가난한 여성 직원들이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현지 공장에 사내 어린이집을 열었다. 공장에 무료 제공되는 식사도 최상급 식재료만 쓴다. 출산휴가 6개월, 임산부 단축근무, 태아검진휴가도 보장한다. 직원들은 성실과 믿음으로 보답했다. 2008년 베트남 공장이 화재로 전소됐을 때 인근 공장에서 기다렸다는 듯 구인공고가 나붙었지만, 직원들은 잿더미 위에 천막을 치고 재봉틀을 돌렸다.
2014년 설립된 에피오피아 공장엔 3,300명이 거주하는 무료 기숙사도 있다. 공단이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해 집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현재 2,700명 수용 가능한 새 기숙사를 추가로 짓고 있다. 야간에는 초교부터 고교 과정까지 정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이다.
신 대표는 “봉제업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힘없는 여성들이 며칠만 훈련받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업종”이라며 “빈민국 수많은 직원들에게 삶의 기반과 희망을 마련해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대표의 이런 경영 철학은 자기 인생을 반영한 것이다. 일곱 살에 고향인 충북 청원을 떠나 구로공단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고모들 도움으로 학교를 다녔다. 숙명처럼 대학 전공도 의생활학과(연세대)였다.
신티에스의 목표는 ‘월급 많이 주는 회사가 되자’다. 창업 때부터 수익의 일정 부분을 직원들과 나누겠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실적이 잘 나온 덕에 처음으로 성과급을 지급했다. 신 대표는 “정직하고 투명하게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삼성만큼 월급을 많이 주는 회사가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싶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