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쿠데타’로 끝난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반란 사태가 ‘러시아군 내부 숙청’이라는 후폭풍을 낳고 있다. 반란 계획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최고위급 장성이 체포됐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바그너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대립각을 세웠던 우크라이나 전쟁 총사령관은 닷새째 종적을 감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 수뇌부 물갈이 작업에 착수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8일(현지시간) 러시아 매체 모스크바타임스는 러시아 국방부와 가까운 소식통 2명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전쟁 총사령관을 지냈던 세르게이 수로비킨 현 러시아항공우주군 총사령관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프리고진과 관련해 이뤄진 조치이며, 수로비킨은 이번 반란에서 프리고진 편에 선 게 명백하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도 수로비킨의 상황에 대해 “좋지 않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 군사블로거인 블라디미르 로마토프 역시 “수로비킨은 (바그너그룹의 철수 이튿날인) 25일 체포됐고, 모스크바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수감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올해 1월 우크라이나 전쟁 총사령관을 지낸 뒤 돌연 강등된 수로비킨은 프리고진과 우호적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체첸 분리주의자 진압, 시리아 내전 등에서 잔인함과 유능함을 함께 발휘해 ‘아마겟돈 장군’ ‘시리아의 도살자’ 등으로 불리지만, 러시아군 내부에선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 러시아 당국이 그를 체포한 게 사실이라면, “수로비킨이 바그너의 반란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고, 반란 실행을 실제 도왔는지 미 정보당국이 파악 중”이라는 전날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다만 러시아 정부는 “추측성 보도”라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의 ‘군 수뇌부 숙청 지시’를 암시하는 정황은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이 (24일 바그너 반란이 종료된 후) 모습을 감췄다”고 보도했다. 게라시모프는 현직 최고위급 장군으로, 프리고진이 이전부터 해임을 요구해 왔던 인물이다. 친정부 성향 러시아 군사 전문 텔레그램 ‘리바리’도 “바그너의 반란을 막는 데 있어 ‘결단력 부족’을 보인 군 인사들을 당국이 색출해 숙청하려 하고 있다”는 소식을 공개했다.
러시아군의 대대적 개편 조짐은 다른 대목에서도 엿보인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프리고진은 당초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게라시모프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생포할 계획이었는데, 거사 이틀 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계획이 유출돼 모든 일이 틀어졌다”고 전했다. 바그너의 모스크바 진격은 애초의 구상이 들통난 탓에 실행된 ‘플랜 B’였다는 얘기다. WSJ는 특히 바그너의 무장반란에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프리고진에게 동조한 러시아군 고위급 지휘관이 더 있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