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 편성 방향과 2023~27년 중기재정운용 등을 논의하는 정부 최고 회의체인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어제 열렸다. 회의를 주재한 윤석열 대통령은 “확고한 건전재정 기조로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며 “빚을 내서라도 현금성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미래 세대 약탈로 단호히 배격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회의에서 이전 정부의 ‘확장재정’을 접고 ‘건전재정’으로 큰 흐름을 전환한 데 이어 1년 만에 이를 재확인한 셈이다.
이러한 정부의 방침은 최근 세수가 급감하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어려운 선택이다. 1~4월 국세 수입은 134조 원에 불과, 전년 동기 대비 34조 원이나 줄었다. 역대 최대 감소 폭이다. 가장 큰 원인이 기업 실적 악화에 따른 법인세 결손이고 연간 무역 적자가 295억 달러에 달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을 고려하면 향후 세수 부족분이 메워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세수에 의존해 재정을 운용할 수밖에 없는 정부는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다는 얘기다. 국채를 발행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난 정부 5년간 400조 원 넘게 급증한 국가 채무를 줄이기는커녕 더 늘리는 데에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을 겨냥해 여야를 막론하고 선심성 공약이 남발될 우려가 크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포퓰리즘 경쟁을 방지하고 나라 빚을 일정 비율 밑으로 관리하기 위한 재정준칙 입법도 국회에서 3년 가까이 공전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복합위기 극복 과정에서 ‘건전재정’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족쇄가 돼선 곤란하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써야 할 곳엔 과감하게 쓰는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더구나 정치적 성격의 보조금을 제로베이스에서 재점검하겠다는 건 불필요한 논란을 키울 수 있다. 윤 대통령도 이날 “진정한 약자를 보호하는 등 써야 할 곳엔 제대로 쓰겠다”고 다짐했다. 공공성과 사회안전망 강화, 취약층을 위한 지출까지 줄이는 우를 범하진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