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야 ‘한국인 투자자’ 하면 베트남에서 버선발로 뛰어나왔죠. 지금은 달라요. 오면 좋고, 간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해요. 문 두드리는 나라가 워낙 많으니 아쉬운 게 없는 거죠. 더 이상 한국은 베트남에서 ‘귀한 손님’이 아니에요.”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을 앞두고 관련 기사를 준비하며 ‘투자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묻자 한 한국 기업인이 이렇게 답했다. 당시 인터뷰에 응한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을 언제든 환영한다”고 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는 4, 5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싸늘해졌다는 얘기다.
한국은 명실상부한 베트남 경제 파트너다.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만 9,000여 곳이 넘는다. ‘누적 외국인직접투자(FDI)’ 1위 타이틀도 한국 차지다. 30년간 양국 관계의 비약적 발전은 무엇보다 그간의 막대한 투자가 바탕이 된 끈끈한 경제협력에 기인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베트남 몸값이 높아졌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베트남에는 투자 가능성을 논의하려는 각국 주요 인사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베트남이 글로벌 기업의 1순위 진출지가 되면서 산업 지대도 이미 포화 상태다. 예전처럼 돈다발을 싸 들고 굴뚝 산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는 격화하는 경쟁에서 차별화할 수 없다. 이제는 ‘양’이 아닌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행히 양국은 수년 전부터 지속가능한 성장, 정보기술(IT), 헬스케어 등 고부가가치 산업 발전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설정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방문 때에도 일부 기업이 베트남에서 녹색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청정에너지·IT 등 공장 부지가 필요 없는 현지 신규 산업에 한국 회사가 진출하고, 베트남은 한국의 우수한 기술력을 전수받아 자생력을 키우는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양국의 ‘양적 교류’ 성공을 바탕으로 ‘질적 교류’까지 이뤄낸다면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다. 지난해 수교 30주년을 맞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한국과 베트남이 새로운 30년을 향해 나아가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