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고니 프리고진이 이끄는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 징후를 미국이 사전에 포착하고 있었다고 미 언론들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 중 한쪽 편을 들기보다는 조용히 상황을 지켜봤다. 반란의 결과 자체보다 러시아의 핵무기 통제권이 흔들릴지 여부를 가장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신중한 기조 속에 푸틴 대통령의 후속 조치를 주시 중이다.
미 뉴욕타임스(NYT)와 CNN방송 등에 따르면 미국 국가안보 고위 관리들은 바그너 그룹 수장인 프리고진이 러시아 군 수뇌부를 겨냥한 군사 행동을 준비 중이라는 징후를 21일 포착했다. 반란 시도를 시작하기 사흘 전이었다.
정보ㆍ국방 당국자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브리핑했다. 이어 반란 음모에 대한 추가 확인이 이뤄지자 22일 의회 지도부에게도 관련 사실을 알렸다. 바그너 그룹은 23일 남부 로스토프나도누 군사령부를 점령한 뒤 수도 모스크바를 향해 거침없이 북진했으나 24일 프리고진은 전격적으로 반란 철회를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러시아 핵무기 사용 문제를 주시했다. NYT는 미국 관리들을 인용, “정보기관은 프리고진이 취한 군사 행동 결과가 무엇일지는 알지 못했지만 군사 행동이 러시아 핵무기 통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곧바로 걱정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미 NBC방송도 "미국 정부가 이번 사태로 핵 보유국인 러시아에 심각한 불안정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군이 고전할 때마다 핵전쟁 가능성을 거론했다. 지난 16일에는 우방국인 벨라루스에 러시아 전술 핵무기를 배치했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내가 푸틴의 전술핵 사용이 걱정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게 진짜냐고) 나를 쳐다봤다”며 “그건 진짜”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 관리들은 23일 프리고진의 무장 반란 시작 후에는 함구령을 유지했다. 반란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미국은 신중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NYT는 “관리들은 (프리고진의 반란)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의 행동으로 서방을 비난할 구실을 제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조심스러워했다”고 보도했다.
프리고진의 봉기 소식이 알려진 뒤 미국과 서방의 반응은 신중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우리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진행 상황에 대해 동맹 및 우방과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고 바그너 그룹 무장 반란 사태를 논의했다. 백악관은 “정상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지지를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서방 국가 장관들과 통화하며 러시아 상황을 챙겼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24일로 예정됐던 중동 방문 일정을 취소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이번 사태의 속보를 전한 건 영국이었다. 영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은 트위터에 올린 일일 정보 업데이트에서 “더 많은 바그너 부대가 (러시아의) 보로네시주를 통해 북진하고 있으며 거의 확실하게 모스크바로 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향후 몇 시간 동안 러시아 보안군, 특히 러시아 국가방위군의 충성도가 현재 위기 사태 진행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