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극에서 상생으로”… 대기업 마트 들어와 상권 살아난 대전 산성뿌리시장

입력
2023.06.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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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전통시장]<25>대전 산성뿌리전통시장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입점 후 20~30대 젊은층 유입 
마트서 공산품 사고, 시장서 식료품 사고 '상생 관계'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전통시장과 대기업 마트는 ‘상극’으로 여겨진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수십 년간 형성된 골목상권이 단숨에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사시사철 냉난방이 가동되는 쾌적한 공간, 다양한 생활 물품, 편리한 주차 시설을 갖춘 대형마트는 보통 시장 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공룡이다. 정부가 격주 주말마다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대전 중구 산성뿌리전통시장만큼은 예외다. 대형마트가 전통시장을 잡아먹는 게 아니라, 시장 한복판에서 다른 점포들과 나란히 어깨 겯고 장사를 하고 있다. 바로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다. 노브랜드를 찾아온 젊은 고객들이 시장으로 넘어와 물건을 사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시장 한복판에 들어선 노브랜드...젊은 손님 유입 일등공신

16일 오후 찾아간 산성뿌리전통시장은 얼핏 보면 전형적인 소규모 동네 전통시장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 입구엔 '잘못 봤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엉뚱한 간판'이 걸려 있다. 바로 시장 간판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노란색 '노브랜드' 간판이다. 궁금한 마음을 안고 시장을 둘러보니 이내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눈에 들어왔다. 위치도 목 좋은 시장 한복판이었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이마트가 운영하고 있는 자체 브랜드다. 이곳에선 농수산물 같은 1차 식품을 팔지 않는다. 상인회와 맺은 협약에 따른 것이다. 고객들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에서 공산품이나 가공식품을 구매하고, 과일과 생선, 야채 등은 시장에서 산다.

노브랜드가 2019년 문을 열기 전 산성뿌리전통시장도 여느 전통시장처럼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점포수는 고작 67개, 손님도 주로 고령층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20~30대 젊은이들로 시장 골목이 북적거린다. 이날도 노브랜드와 그 주변 점포들에서 젊은 손님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20대 남녀 일행 4명은 시장에서 과일과 야채 등을 산 뒤 필요한 다른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노브랜드를 찾았다. 어머니와 딸 등 가족 단위 방문객도 많았다.

시장에서 만난 김소연(29)씨는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그것도 아주 싸게 살 수 있어 시장에 자주 온다”며 “요즘엔 홈플러스나 이마트 같은 대형 마트는 거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브랜드 바로 앞에서 정육점과 야채가게를 하고 있는 상인 정진섭(59)씨는 “예전에는 나이 든 어르신이나 중년 주부들뿐이었는데, 지금은 노브랜드와 시장에서 두루 장을 보는 젊은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며 흡족해했다.

공청회만 4번...입점까지 우여곡절도 많아

하지만 노브랜드를 시장에 입점시키고 한식구로 받아들이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노브랜드 자리엔 원래 시장 마트가 있었다. 그런데 마트가 부도로 폐업을 하면서 시장에 위기가 찾아왔다. 손님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빈 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하나 고민하던 김태성(48) 상인회장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에서 해답을 찾았다. 김 회장은 “2019년 봄 노브랜드 측에 상생스토어 입점 의사를 타진했다”며 “담당자는 시장을 직접 둘러본 뒤 ‘위치가 좋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정작 가장 큰 난관은 상인들의 마음을 여는 일이었다. 두 차례 공청회를 열었지만 상인들은 냉담했다. ‘대기업 마트’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우리보다 먼저 노브랜드가 입점한 충북 제천시 내토시장에 가서 인터뷰를 하고, 장사하는 동영상까지 찍어 와 보여줬지만 상인들은 ‘좋은 말만 하고, 좋은 것만 찍은 것 아니냐’고 거세게 항의했다”고 돌아봤다.

그래도 김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버스를 대절해 상인들을 태우고 노브랜드가 입점한 대구 월배시장을 찾아가 생생한 현장을 지켜보고, 그곳 상인들과 얘기를 나눴다. 내친김에 노브랜드에서 파는 물건을 직접 상인회 사무실에 깔아놓고 “충분히 상생하며 장사를 할 수 있다”고 거듭 설득했다. 김 회장은 “그렇게 상인회 회의실과 현장을 오가며 네 번의 공청회를 거치면서 상인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며 “노브랜드가 장사에 손해를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먹거리에 직접 기른 싱싱한 채소도 인기

원래 산성시장은 상인들이 직접 시골에서 키운 싱싱한 농산물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새로 유입된 고객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났다. 상인 김애란(65)씨는 “남편과 함께 금산에서 농사지은 깻잎과 고추, 열무, 배추까지 여러 채소를 판다”며 “10여년 전부터 예약 전화를 하는 손님 적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새로 단골이 된 젊은 주부들이 많다”고 말했다.

시장 안과 그 주변 식당들도 덩달아 신바람이 났다. 마트에서 물건을 산 젊은 손님들이 식사나 간식을 해결하러 식당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순대국밥집은 인근에서 이미 유명한 맛집이 됐고, 떡집과 떡볶이집도 인기몰이 중이다.

김 회장은 시장 손님이 젊어지는 만큼 젊은 상인들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 회장은 “노브랜드 입점과 함께 젊은 상인들이 운영하는 먹거리 중심의 ‘청년마차’도 들어와 시장이 더욱 활기를 찾았는데 코로나19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은 게 많이 아쉽다”며 “일상을 되찾았으니 다시 많은 청년 상인들이 와서 함께 장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전= 최두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