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10명 중 1명이 국가승인통계를 위한 설문조사에서 마약류 진통제 펜타닐 패치 사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해외에서 '좀비 마약'이라 불릴 정도로 폐해가 심각한 펜타닐이라 충격적인 결과이지만 조사 주체조차도 문항이 단순해 해석에 유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성가족부는 전국 초등학교 4∼6학년과 중·고등학교 학생 1만7,14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 14일부터 두 달간 학급 단위 집단 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2022년 청소년 매체이용 유해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22일 공개했다. 실태조사는 청소년 정책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2년마다 진행하는데, 지난해 처음 환각성 물질 및 약물 경험 문항이 추가됐다.
조사 결과 중고등학생의 '식욕억제제(나비약) 복용 경험'은 0.9%, '진통제(펜타닐 패치) 사용 경험'은 10.4%로 나타났다. 식욕억제제는 중학생(0.7%)보다 고등학생(1.0%), 남학생(0.6%)보다 여학생(1.2%)이 더 복용했다. 진통제는 고등학생(8.4%)보다 중학생(12.3%), 남학생(8.9%)보다 여학생(12.1%) 경험률이 높았다.
식욕억제제 구매 방법(중복 응답)은 '병원 처방'이 62.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인터넷·SNS'(22.8%), '다른 사람(성인)에게 얻어서'(9.8%) 순이었다. 진통제는 '병원 처방'이 94.9%로 압도적이었고, '다른 사람(성인)에게 얻어서'가 9.6%로 뒤를 이었다.
펜타닐은 효과가 모르핀의 최대 100배에 이르고 중독성이 강한 데다 마치 좀비처럼 근육 경련을 일으켜 말기암 환자 등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치사량이 2㎎에 불과해 미국에서는 젊은이 사망 원인 1위로 지목될 정도로 무서운 마약류다.
중고생의 펜타닐 패치 경험률이 10%가 넘는다는 설문 결과에 여가부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20만 명대로 추산되는 국내 마약 투약자 규모와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학생보다 여학생, 고등학생보다 중학생 경험률이 높다는 것도 조사의 신빙성을 흔든다. 한 마약 전문변호사는 "그간 마약사범들을 봐도 믿기 어려운 결과라 설문 문항 등을 정확히 따져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병원 처방이 94.9%라는 점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에 펜타닐이 진통제로 처음 도입된 1999년부터 만 18세 미만에게 사용을 금지했다. 다만 의사가 판단해 고통이 극심한 중증 환자에게는 처방이 가능한데, 이런 경우는 현재 400여 명으로 파악된다. 과거 청소년들이 펜타닐을 임의로 처방받아 유통하다 검거된 사건도 있었지만 식약처가 2019년부터 과다 처방 의사들을 모니터링한 후 처방 건수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진통제(펜타닐 패치) 사용 경험'이란 설문 문항이 혼동을 유발했을 여지가 많다. 여가부도 중고생들이 괄호 앞에 있는 '진통제'만 보고 응답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판단한다. 다만 올해 첫 조사인 데다 국가승인통계라 결과 자체는 그대로 공표했다고 설명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식약처 등 관계 기관과 이번 결과에 대해 논의 중"이라며 "다음 조사 때는 문항을 보다 구체화해 자세하게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