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입력
2023.06.24 04:30
11면
<122>'환상' 속 여성할당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역’차별의 대명사가 된 여성 할당제, 진짜 있나요?

지난 칼럼, ‘다른 건 다른 거고 틀린 건 틀린 거지’를 통해서 사회문화적 이유로 과장되는 여성과 남성의 성차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성차를 핑계 삼아 역할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교육 현장에서도 짧은 시간 내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이를테면 남성 강사와 현장의 여성을 두루 비교하며 살펴보게 한 후, 이어서 강사와 마동석 배우를 떠올리며 비교해 보게 한다. 강사는 마동석 배우와 같은 성별일 것으로 여겨지지만 분명 그 배우보다는 현장의 다른 여성들과 힘이나 체격, 몸무게 등 다양한 면모에서 차이가 더 적게 날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단적인 예시이지만 이를 통해서 단순히 성별 차이보다 개인과 개인 간의 차이가 훨씬 크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난 칼럼의 제목을 빌려 다시 이야기하면,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고, 그 차이의 이유를 생물학적으로 환원하여 역할에 차별을 두는 것은 틀린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많은 청소년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실로 학교에서 학업 성취도나 학습 태도, 신체적 발육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성별 차이가 크지 않음을 계속 보아왔으니, 그것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들은 그 차이 없음을 다시 강조하며 이야기한다. "성별의 차이가 없는 만큼, 우리의 경쟁도 공정해야 한다! 그래서 '여성' 할당제는 (역)차별이다!"

교실에서 이런 아찔한 반응을 몇 번 맞닥뜨린 이후, 여성 할당제에 대한 분노를 잠재우는 나름의 노하우가 쌓였다. 일단 억울함과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들을 두루 살피며 '공정'하지 못한 절차가 분노 포인트라는 점을 되새긴다. 그러고 나서 되묻는다. "그런데 여성 할당제, 진짜 있을까요?" 우리나라에 구조적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일정 비율을 여성에게 우선 할당하는 '여성 할당제'라 불릴 수 있는 제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라 하여 공무원 채용 시 한 성별이 30%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성별을 추가 합격시키는 제도가 있으나 제도 시행 이후, 2019년까지 추가 합격된 인원은 남성이 800여 명이나 더 많았다. 실상 '남성 할당제'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강사가 쏟아내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해진 참여자에게 쐐기를 박는 한마디를 남긴다. "그러니까 부당하게 차별받고 억울한 누명까지 쓴 여성들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이 과정을 통해 교육 참여자들은 자신이 믿어 온 정보를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고, 불공정에 대한 감각을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으로 확대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드는 찝찝한 마음도 있다. 지금, 여성 할당제가 없어도 정말 괜찮은 걸까?

구조적 차별을 외면한 채 공정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앞에서 누누이 이야기했듯 성별 간의 차이가 차별이 되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시점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놓인 현실의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애초 '여성 할당제'와 같은 제도는 왜 고려됐을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 과정에서 부당하게 탈락하고, 어렵사리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남성 대비 여성 임금' 현황은 2021년 기준 6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크다. 승진하고 싶어도 보고 배울 롤모델이 부족하고, 더 많은 가사·돌봄노동 부담(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맞벌이 가구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남자 54분, 여자 187분으로 집에서도 여성이 3배 이상 더 많이 일하고 있다)에 시달리다 유리천장에 부딪히고 마는 성차별적인 현실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이렇게 차별이 만연한 현실 앞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두는 것을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1998~2015년 발생한 자동차 정면 충돌 사고에서 여성의 치명상 발생률이 남성보다 73% 더 높았다고 한다. 자동차 개발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신체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름을 틀림이 아닌 다름 그대로 두기 위해서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진공 속에서 살고 있지 않고 다양한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로 가득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그저 '공정해야 한다'는 말만으론 바뀌지 않는다.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할당제'는 그런 현재의 구조적 차별로 인한 불공정을 시정하는 적극적인 조치의 일환이다. 물론 할당제 역시 변화를 만드는 데 충분하지는 않으며 기존의 보이지 않는 특권을 누리는 이들로부터 쉽게 저항이 발생한다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조치는 현재의 구조적 차별이 개선될 때까지 '임시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 임시의 기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까지? 한국사회는 성공한 여성 정치인, 기업인, 직장인, 운동선수가 뉴스를 장식하고 있으므로 여성 할당제는 이제 불필요할까?

변화의 시작 티핑 포인트 25%, 우리나라는?

1970년대,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캔터 교수는 기업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을 연구하면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기업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여성이 일정한 비율, 약 25%를 넘어가자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차별이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티핑 포인트에 대한 이야기다. 굳이 어렵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혼자서 조직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문제에 공감하는 인원이 어느 비율을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함께 문제를 이야기하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캔터 교수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그 비율을 작게는 25~30%로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떨까? 2021년 기준, 상장법인 2,246개사에서 여성 임원 비율은 5.2%였다. 심지어 전체 상장기업 중 63.7%, 1,431개 기업에는 여성 임원이 1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대 기업으로 추려보면 어떨까? 2022년 자료에 따르면,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5.6%였고 여성 임원이 전혀 없는 기업은 28개였다. 공무원은 어떨까?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공무원 중 여성은 47.9%로 절반에 달하지만, 3급 이상 고위직 여성 공무원은 8.5%에 불과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인마저 형편은 비슷해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고작 19.1%뿐이다. 이 많은 숫자들이 이야기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는 할당제의 부작용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인 세상에서 살고 있고, 그마저도 시행되지 않았는데 앞서서 비난하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없는 여성 할당제를 비난할 게 아니라, 할당제 그 이상을 논의할 때!

여성 할당제를 비롯한 조치로 사회 구조적 차별을 개선하는 것은 공정할 뿐만 아니라 효율을 올리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많은 글로벌 기업에서 CDO(Chief Diversity Officer, 최고 다양성 책임자)라는 직책을 만들고 있다. 기업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이 기업 이미지 향상에 기여하고, 나아가 다양한 구성원의 시야가 기업의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뉴스에 등장했던 국내 기업의 여성혐오 광고, 채용 성차별, 성폭력 사건 등 이마를 짚게 만들었던 문제들을 떠올려 보자. 그곳에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책임과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여성이 충분히 있었다면 분명 개중 많은 문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할당제가 유일하거나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듯 할당제는 임시적 조치에 가깝고, 할당제조차도 해당 구성원의 다양성을 확보하여 점진적으로 차별 개선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아쉬운 지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하지 않는가. 당연히 쉬울 리 없고 게다가 구조적 차별은 없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이 있는 세상이다 보니 그 한 걸음을 떼기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다름이 다름 그 자체로 존중받으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제는 조금 더 진지하게 할당제, 그 이상을 논의할 때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이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