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에 찬성토록 부당 압력을 행사해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에 손해를 끼쳤다는 점이 인정돼 결국 약 1,300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물게 됐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엘리엇사건 중재판정부는 20일 엘리엇이 제기한 해당 사건에서 엘리엇 측 주장 일부를 인용해 우리 정부에 손배금 5,358만6,931달러(약 690억 원) 및 지연이자 등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판정에 따른 손배금은 당초 엘리엇이 청구한 7억7,000만 달러(약 9,917억 원)의 약 7% 규모다. 법무부는 지난 2018년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ISDS) 개시 이래 5년 만에 나온 이번 판정에 대해 “중재판정부가 인용한 배상금액 기준으로 93% 승소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핵심은 ‘부당한 관치’로 끝내 나랏돈 1,300억 원을 날리게 됐다는 점이다.
당시 물산과 모직 합병비율은 물산 1주당 모직 0.35주였다. 물산 지분 7.12%를 보유했던 엘리엇은 모직 주식가치가 과대평가돼 손해를 보게 됐다며 합병에 반대했다. 하지만 합병안은 당시 물산 지분 11%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찬성해 통과됐다. 엘리엇은 국민연금 찬성이 한국 정부의 부당한 압력 때문이라며 ‘삼성의 뇌물과 (박근혜) 대통령의 (삼성 경영권) 승계 계획 지원 사이에 명확한 대가성이 존재한다’고 판시한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판결문 등을 제시했다.
우리 법원부터 당시 정부의 삼성 경영권 승계 부당지원을 인정한 이상, 엘리엇의 ‘부당 관치’ 주장을 100% 배제하기엔 애초부터 어려운 싸움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캐피털 역시 약 2,500억 원 규모의 같은 ISDS를 진행 중이어서 정부 손배금 규모는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국고에 손실을 끼친 유책 이해당사자들에 대한 구상권 추진 검토와 함께, 향후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과정 등에서 유사 시비가 불거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