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노동 동일임금’이란 거짓

입력
2023.06.21 16:00
26면
김형동 의원의 발의, 내용 뜯어보면 실효성 의문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국민의힘 노동위원장인 김형동 의원이 최근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안(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근로계약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 즉,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차별을 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비정규직 차별을 한 번에 타파할 것 같은 법안 명칭에 설레는 노동자도 있겠으나, 내용을 뜯어보고 그 기대는 푹 꺼지고 만다.

□ 우선 법안은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을 사용자가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근로자 대표의 의견은 청취만 하면 된다.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는 임금 등에서 차별할 수 있기 때문인데, 사용자가 차별의 기준을 정하면 공정한 기준이 될까. 대법원 판례는 동종·유사업무를 판단할 때,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 등에 명시된 업무 내용이 아니라 근로자가 실제 수행해 온 주된 업무의 본질적 차이가 없으면 인정한다. 업무 범위·책임·권한 등에 다소 차이가 있어도 된다. 법안 내용은 대법원 판례보다 뒤처져 있다.

□ 사내하청·파견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도 이 법안 적용 대상이다. 임금차별을 목적으로 사용자에 의해 설립된 별개의 사업은 동일한 사업으로 보고, 파견 근로자도 동일한 사업 내의 근로자로 본다고 돼 있다. 하지만 ‘임금차별을 목적으로 설립된 사업’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기준이 없다. 무엇보다 이번 법안에는 처벌조항이 없어서, 안 지켜도 그만이다.

□ 사실 파견법에는 이미 ‘동일노동 동일임금’ 조항이 있다. 파견법 21조는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 비해 파견근로자를 차별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위의 대법원 판례도 이 조항을 해석하면서 나왔다. 차별적 처우를 받으면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하면 된다. 하지만 노동위 신청이나 소송을 통해 차별을 시정받는 파견 노동자는 미미하다. 특정 종류의 업무만 딱 떼어서 비정규직을 쓴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언제나 피해갈 수 있다. 더 고되고, 더 위험한 업무를 시키고도 비정규직에게 임금을 덜 주는 이 사회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을 어떻게든 피해갈 만큼 약았다.

이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