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지난해보다 한 단계 떨어진 성적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 경제 성과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나 ‘방만 재정’이 발목을 잡았다. 금융시장 취약성과 규제 후진성도 감점 요인이었다.
20일 IMD는 ‘2023년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64개 대상국 중 28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20~2021년 23위였던 한국의 순위는 지난해(27위)에 이어 2년 연속 밀려났다. 한국의 역대 최고 기록은 22위(2011~2013년), 최저는 41위(1999년)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이면서 인구가 5,000만 명을 넘는 7개국 중에선 미국(9위)과 독일(22위)에 이어 3위(지난해 4위)를 기록했다. 영국(29위)·프랑스(33위)·일본(35위)·이탈리아(41위)보다 높다.
IMD는 △경제 성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 △인프라 등 4대 부문(세부 항목 각 5개)별로 계량·설문 지표를 취합해 순위를 매긴다. 경제 성과는 22위에서 14위로 뛰며 종전 최고 기록(2015년 15위)을 갈아 치웠다. 국내 경제(12위→11위)·국제 투자(37위→32위)·고용(6위→4위)·물가(49위→41위) 등 각 세부 항목에서 순위가 오른 효과가 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치솟는 물가 등 어려운 상황을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안정화한 영향”이라고 평했다. 실제 한국의 물가상승률(3.7%·4월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7.4%)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정부 효율성은 하락(36위→38위)했다. 세부 항목 중에선 재정(32위→40위)의 하락폭이 컸다. 한때 1위(2003년)였던 재정 평가 순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18위) 때에도 20위를 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부터 급격한 확장재정을 펼친 탓에 내리막길을 탔다. 2021년 26위→2022년 32위→2023년 40위로, 불과 2년 만에 14단계 급락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대응이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지난 정부의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다른 나라를 크게 앞질렀다”고 지적했다. 2019년 국가채무비율은 37.6%에서 지난해 49.6%까지 불어났다.
이번 정부가 민간주도성장을 외치며 대규모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정부 효율성의 다른 세부 항목인 보조금의 경쟁 저해 정도(35위→45위)나 외국인투자자의 인센티브 매력도(28위→40위) 역시 하락했다. 윤인대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재정준칙 입법화 등 건전재정 노력으로 정부 효율성을 높이고, 규제 개혁 같은 경제 체질 개선에도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기업 효율성(33위)과 인프라(16위)는 전년과 순위가 같았다. 다만 기업 효율성 세부 항목인 주가지수 변화율은 10위에서 60위로 주저앉았다. 주식시장에서의 자금 조달 용이성(36위→41위)도 하락했다. 지난해 한국의 주가 변화율은 25%다. 미국(8.8%)과 일본(9.4%), 독일(12.3%) 등 다른 주요국보다 최대 3배 가까이 변동성이 크다.
국가별 순위는 덴마크가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유지했다. 지난해 11위였던 아일랜드는 2위로 올라섰고, 스위스·싱가포르·네덜란드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