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식 선언 이후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의 크루즈 여객선 유치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코로나19로 막혔던 항로가 뚫리자 수천 명이 동시에 탑승하는 '바다 위의 리조트'라 불리는 크루즈를 유치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의도다. 국내 대표 항구인 제주와 부산, 인천은 물론 강원 속초와 경북 포항 등 동해안에서도 운항이 재개됐고, 최근엔 서해안을 끼고 있는 충남 서산도 크루즈 유치에 가세해 눈길을 끈다.
20일 강원도 환동해본부에 따르면 이탈리아 선적 코스타세레나호(11만4,000톤급)가 지난 17일 승객과 승무원 3,150여 명을 태우고 속초항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배 길이가 290m, 건물 14층 높이를 자랑하는 코스타세레나호는 6박 7일 일정으로 오타루와 하코다테, 아오모리를 거쳐 23일 속초항에 돌아온다.
이 배는 항해 중 잠시 머무는 기항이 아닌 속초항을 모항으로 출발해 지역사회의 기대감이 크다. 1,000명이 넘는 승무원이 배에서 내려와 동해안 관광지를 둘러보고 식자재 등 일부 물품을 속초에서 구매해 채워 넣기 때문이다. 기항지 손님보다 최대 4배까지 지출이 많다는 모항 승객들이 속초 중앙시장과 설악산 등 주요 관광지를 찾기도 했다. 환동해본부 등이 편당 최대 2,000만 원의 운항장려금을 주고서라도 크루즈 유치에 나서는 이유다.
속초항에는 10월엔 네덜란드 선적 크루즈가 승객 2,300여 명을 태우고 들어올 예정이다. 시는 올해 6차례 크루즈가 들어와 1만3,000여 명의 관광객이 속초를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변성균 강원도 환동해본부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입항이 금지된 기간에도 74억 원을 들여 터미널 확장 공사를 마칠 정도로 크루즈 산업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화물컨테이너로 가득 찼던 경북 포항 영일만항에도 지난 5일 코스타세레나호가 닻을 내렸다. 국제 크루즈가 영일만항에 들어온 건 2019년 12월 이후 3년 6개월 만이다. 당시 포항을 떠나 일본 오키나와, 미야코지마, 대만 기륭을 거쳐 부산에 귀항한 코스타세레나호에는 3,000여 명이 탑승했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부두에서 축포를 터뜨리며 1년가량 공들인 크루즈를 맞이했다. 내년 초 영일만항 국제여객터미널 완공을 앞두고 경주를 비롯한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는 패키지 개발에도 착수했다. 수천 명에 달하는 관광객과 승무원이 찾는 크루즈의 모항이나 기항이 되면 항만은 물론 지역 상권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포항시 관계자는 "관광분야뿐 아니라 크루즈 전문 인력 양성과 승무원들의 해외 선사 취업, 선박용품 판매 등 관련 산업 활성화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에는 서해안에 자리한 충남 서산시가 크루즈 유치경쟁에 가세했다. 시는 롯데관광개발과 협약해 내년 5월에서 10월 사이 서산 대산항에 11만 톤급 크루즈를 유치할 계획이다. 국내 동서남해안에서 모두 크루즈가 출항하는 경쟁구도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억눌렸던 해외 관광수요가 늘고 있어 당분간 크루즈 모객이 활기를 띨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한령(限韓令)으로 중국과 러시아 취항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 모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식 강릉원주대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면 해양관광상품이 주목받기 시작하는데 그중 하나가 크루즈 관광"이라며 "현재 일본 위주인 노선을 얼마나 빠른 시점에 러시아와 중국, 홍콩 등지까지 확장하느냐가 과제"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