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방한한 챗GPT 개발사 오픈AI 대표 샘 알트만이 인공지능과 초인지화 테크놀로지 대변혁의 차세대 주역으로서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챗GPT가 인간의 직업과 일을 대치하리라는 우려가 크다. 혹자는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특이점(singularity) 시대가 곧 도래하리라고 예견한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 문명이 종국에는 인간 문화를 완벽하게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를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사회 변화를 불러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인류 사회를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바꾸는 것은 아니다. 16세기 구텐베르크의 대량 인쇄기술은 활자중심 문화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지만, 그 이전의 구술문화 시대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다.
19세기 말에는 전기적 투사 원리의 활용으로 전자 시각문화 시대가 열렸다. 영화, TV 등 영상매체가 사회적 소통의 중심 매체가 되었지만, 구술·활자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20세기 후반 이후 개인용 컴퓨터 매개 상호작용문화가 시작됐지만, 구술·활자·시각문화는 여전히 존재했다.
21세기의 첫 이십 년이 지난 이즈음, 우리는 데이터와 인공지능에 기반한 가상문화(virtuality)의 시대, 메타버스와 생성형 인공지능의 보편화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전 시대의 소통양식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오히려 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해 철저한 고립과 고난의 시간을 겪은 인류는 대면을 바탕으로 한 구술문화, 인쇄된 텍스트에 기반한 활자문화, 이미지 중심의 시각문화, 개인 컴퓨터 중심 상호작용 문화로의 회귀를 통한 소통의 진정성 회복을 갈구하고 있다. 발터 벤야민이 1935년 논문에서 얘기한 오라(aura)의 복원이 새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빙, 구글의 바드, 오픈AI의 챗GPT가 세간의 관심을 크게 받는 이유는 이들 서비스가 인공지능을 통해 전통적 구술, 활자, 시각문화에 바탕을 둔 원초적 소통 욕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이들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미래도 그동안 인간이 구축해 온 소통 문화를 어떻게 더욱 지속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테크놀로지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지만 이에 대한 인류의 적응에는 늘 지체가 있어서, 사회를 빠른 속도로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인류의 적응 지체로 인해,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사회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은 매우 역설적이다.
그래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이를 내재화해서 활용하는 것은 인류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를 생업의 현장에서, 산업 현장에서, 교육 현장에서, 그리고 우리 일상의 영역에서 차분히 관찰하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찰하고 스마트하게 대처하면 된다. 인간보다 앞선 테크놀로지는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과학기술 문명이 결코 인간 문화를 압도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역설은 지금 다음 세대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이 테크놀로지에 대한 숙련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인류의 보편적 구술, 활자, 시각, 컴퓨터 매개 상호작용 문화에 대한 원숙한 이해가 더욱 절실하다. 수천 년 동안 계속된 인간 문화의 보편 원리가 예측 불가능한 미래 사회 대비에 더 적확한 처방이다.
각급 학교와 대학은 인간 문화의 보편 원리를 다음 세대와 교감하고 계승하기 위한 테크노 인문학과 테크노 사회과학의 방향성을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더 잘하는 것을 함께 찾고, 이를 선도적으로 계발하는 것이 미래 연구와 교육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