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팅 발언' 등 우리 정부의 외교 노선을 노골적으로 비난, 겁박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두고 여권에선 '외교적 기피 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PNG)로 지정해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터져 나왔다. '국민 자존심 세우기' 차원에서 당장 정부를 압박해 추진할 듯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PNG 지정의 여파가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싱 대사 발언 다음 날인 지난 9일엔 그의 추방을 요구했고, 11일에도 "싱 대사에게 우리 국민 앞에서 진심 어린 공개 사과를 하라고 최후통첩하고, 거부하면 지체 없이 PNG로 지정해 추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후 같은 당 김석기·이철규·조경태 의원 등이 동조하는 의견을 내놨다.
PNG는 라틴어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비정상적인 외교 활동을 한 외교관을 지정해 추방할 수 있는 빈 협약(외교관의 역할 등을 명시한 국제 협약)상 권리다. PNG로 지정되면 72시간 내에 짐을 싸 출국해야 한다.
반면, 정부의 반응은 여권과 온도차가 있다. 싱 대사가 외교관의 본분을 망각한 채 우리가 묵과할 수 없는 비우호적 발언을 쏟아낸 건 맞지만, PNG 지정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정부로선 실제 추방에 따르는 '도미노 현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통상 특정국 외교관이 PNG로 지정돼 추방당하면, 이 외교관이 속한 정부도 자국 주재 상대국 외교관을 맞추방한다. 일종의 '팃포탯'(tit for tat·맞받아치기) 전략이다.
한국 정부가 빈 협약에 의거, PNG로 지정해 추방한 유일한 건도 맞추방으로 번졌다. 1998년 러시아는 우리 참사관급 외교관이 군사기밀을 빼내려 했다며 추방시켰다. 우리 정부도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주한 러시아 대사관의 참사관을 맞추방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한국 외교관 4명을 추가로 쫓아냈다. 사태가 커지면서 한러 관계는 급랭했고, 박정수 당시 외교부 장관이 취임 5개월 만에 경질됐다.
'보복 외교'에 능한 중국은 맞추방에 익숙하다. 지난달에도 캐나다 외교관 1명을 추방했다. 캐나다 정부가 자국 정치인을 뒷조사했다는 이유로 중국 외교관을 PNG로 지정하자, 상하이 주재 캐나다 외교관을 추방한 것이다.
우리가 싱 대사를 추방하면 중국도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를 추방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에 대한 조치 수위를 높여가면 양국 모두에 득 될 게 없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만약 싱 대사를 추방해서 중국이 우리 대사를 맞추방한다면 그 이후 쓸 카드가 마땅치 않다"고 전망했다. 강 교수는 "한미일 공조 강화를 바라지 않는 중국도 우리를 계속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계기를 찾아 양국 간 소통의 물꼬를 트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