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서 탄 배… 전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력
2023.06.17 10:00
19면
넷플릭스 드라마 '전쟁과 선원'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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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에 겨우 하루 일한다. 결혼해서 아이가 셋이다. 도저히 가족 생계를 책임질 수가 없다. 오랜 친구가 제안한다. 함께 선원이 되자고. 1년 넘게 집을 떠나야 하나 보상은 확실하다. 가족과의 이별이 가슴 아프지만 가족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알프레드(크리스토퍼 요네르)는 그렇게 친구 시그뵨(폴 하겐)과 함께 배에 오른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돈이 아닌 나치와의 전쟁이라는 괴물이다.

①전쟁이 만들어낸 참상

알프레드와 시그뵨은 노르웨이 항구도시 베르겐 출신이다. 1939년 전쟁의 그림자가 유럽에 드리웠어도 그들은 2차 세계대전 발발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들이 탄 화물선은 연합군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정부로부터 징발된다.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참전을 하게 된 셈이다. 가족과는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 나치 잠수함의 어뢰 공격 위협 속에 그저 정해진 항해를 해야 한다.

알프레드와 시그뵨은 화물선 침몰을 종종 목격한다. 선원들을 구하기도 한다. 불안이 일상을 떠돈다. 항구에 정박할 때 도주할 수도 있으나 동료를 두고 떠날 수는 없다. 결국 둘이 탄 배 역시 나치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다.

②살아남은 자들의 비극

알프레드와 시그뵨은 다행히 살아남는다. 하지만 정신적 후유증이 뒤따른 생존이다. 불운은 이어진다. 캐나다 병원에서 몸과 마음을 치료 중이던 알프레드에게 나치가 점령한 베르겐에 영국 공군이 폭격을 했고, 가족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알프레드는 절망한다.

3년 정도면 끝나리라 생각했던 전쟁은 더 지속된다. 종전 이후에도 전쟁 후유증은 오래 남는다. 알프레드를 돕기 위해 늘 최선을 다했던 시그뵨은 운명의 장난에 걸려들고 만다. 드라마는 전쟁에 휘말린 보통사람들의 불행을 두 친구와 한 가족을 렌즈 삼아 세세히 들여다본다. 전쟁은 극소수 정치인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이들에게 비극이라고 영화는 조용히 웅변한다.


③전쟁의 가려진 상처

드라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인간애다. 전쟁 속에서도 선원들은 자신만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다. 글 모르는 어린 선원에게 미래를 위한 공부를 독려하기도 한다. 나치라고 딱히 절대 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알프레드와 시그뵨의 우정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어려서부터 절친한 사이인 둘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사선을 함께 넘는다. 하지만 둘은 원치 않았던 상황을 맞게 되고, 수십 년 동안 마주할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서로를 자기 목숨처럼 아꼈던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삶이 그들을 기다린다. 마지막 대목에서 둘은 말 없이 술 한잔을 하고 헤어진다. 비인간적인 전쟁을 겪고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두 친구의 마지막 만남이 가슴을 누른다.

뷰+포인트
2차세계대전 중 노르웨이 민간 선박 3,000척 가량이 전쟁에 동원됐던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무명의 선원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여러 고난을 겪고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참전군인과 달리 잘 조명되지 않기도 했다. 드라마는 역사에서 잘 드러나지 않은, 그러나 기억해야 할 사연을 차분하게 묘사해낸다. 전폭기 폭격, 선박 침몰 장면 등이 나와도 전쟁을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기도 하다 원래 영화로 만들어졌으나 3부로 나뉘어 드라마 형식으로 공개됐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노르웨이 영화 대표로 출품되기도 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100%, 시청자 88%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