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기업에서 8년간 근무했던 김은경(33)씨는 요즘 아침마다 산딸기를 따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2년 전 울릉도로 이사와 가장 먼저 달라진 변화다. 매일 새벽마다 빽빽한 지하철에 몸을 맡겼던 김씨는 이제 야생화가 가득 핀 숲길을 걷고, 물 맑은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 캠핑을 위해 울릉도를 찾았다 자연 풍경에 반해 아예 눌러앉았다. 지난해 함께 온 남자친구와 결혼도 했다. 김씨는 “대도시에선 내가 한낱 기계 부품 같았지만 여기서는 나물 채취부터 문고리 하나까지 다 직접 고치다 보니 성취감과 만족감이 크다”며 “야생의 원초적 삶을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최동단 외딴섬 울릉도에 사는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가 늘고 있다. 2년 전 9,000명 선이 깨지며 인구소멸 위험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지난해 100여 명이 증가해 깜짝 반전했다. 올해 들어 불과 4개월 만에 50명이 더 들어와 9,056명까지 인구가 회복됐다. 섬에 들어온 대부분은 40세 미만이다. 고남하 울릉군 교육인구정책팀장은 “2021년 대형 크루즈 선박이 취항하고, 코로나19 유행 당시 관광객이 늘면서 인구도 덩달아 증가했다”며 “2025년 말 공항이 생기면 인구는 더 가파르게 늘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섬을 방문한 관광객도 46만여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육지에서 200㎞가량 떨어진 울릉도는 해안선 길이 64.43㎞, 총면적 72.91㎢로 국내 3,348개섬 중 8번째로 크다. 독도 등 44개 부속 섬이 있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섬은 해안절벽과 울창한 숲, 높은 암봉 등 웅장한 경치를 자랑한다. 국내 유일의 원시림이 있고, 다양한 특산식물이 분포해 ‘한국의 갈라파고스’로 불린다. 하지만 먼 거리만큼 접근성은 떨어진다. 강원 강릉(강릉항)과 동해(묵호항), 경북 울진(후포항)과 포항(포항구항)에서 매일 한 차례씩 출발하는 배편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궂은 날씨로 자주 결항된다. 지난 7일 서울에서 출발해 차로 3시간, 강릉항에서 뱃길로 다시 3시간을 이동한 뒤에야 섬에 닿았다.
섬에 입도한 MZ세대들은 쉽게 닿을 수 없어 느끼는 불편함과 고립감이 울릉도의 매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섬에 온 지 5년째인 임효은(30) ‘울릉공작소’ 대표는 “파도가 높으면 배가 뜨지 않고, 냉동식품을 주문하면 다 녹아서 오고, 아프면 참아야 한다”며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없어 오히려 해방감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우연히 한 대학에서 진행한 ‘울릉도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정착했다. 그는 섬 고유의 식물과 명소를 그린 컵과 엽서 등 기념품을 만들어 판다. 지난해 이주한 작곡가 박한영(30)씨는 “검푸른 바다 한복판에 완전히 고립된 삶”이라며 “이국적인 풍경에 시간도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아, 새로운 삶을 꿈꾸는 젊은 세대에 최적의 장소”라고 했다.
섬의 독특한 환경도 MZ세대를 끌어들인다. 정성훈(38) ‘울릉브루어리’ 대표는 울릉도 추산 지하수로 만든 수제맥주를 다음 달부터 판매한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울릉도에 살다 서울로 나갔다. 3년 전 다시 입도한 그는 “추산 지하수는 깨끗하고 미네랄 등 영양성분 함유량이 높다”며 “울릉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를 만들어 섬으로 사람들을 모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는 맥주를 매개로 섬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관광상품도 개발할 계획이다.
올해 3월 섬에 프리다이빙센터 ‘캄인블루’를 연 지성훈(36)씨는 “국내에서 울릉도가 다이빙하기 가장 좋다”며 “배 타고 나가지 않아도 수심이 충분히 깊고, 물이 깨끗해 수중 가시거리가 30m에 이른다”고 했다. 여기에 난류성 물고기와 수중생물도 풍부하다. 다이빙 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지만 그간 교통이 불편해 찾는 이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여름에만 2,000여 명이 다이빙을 즐기러 섬을 다녀갔다.
MZ세대 유입으로 섬도 활기가 넘친다. 이정태 남양1리 이장은 “젊은 세대가 들어오면서 폐쇄적이었던 섬 문화가 개방적으로 바뀌었다”며 “고령화가 심각했는데, 아이 울음소리도 들리면서 주민들이 반기고 있다”고 했다. 울릉도 관광업도 호황이다. 기존 중ㆍ장년층 단체관광에서 개인관광을 선호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섬 구석구석까지 관광객 발길이 닿고 있다. 울릉도에서 영감을 받은 기념품이나 특산물 개발에 젊은 세대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기념품 시장도 커지고 있다.
다만 섬의 정주여건은 녹록하지 않다. 당장 살 곳이 마땅치 않다. 임효은 대표는 “5년간 세 번이나 이사했다”며 “빈집은 많지만 대부분 숙박업을 용도로 예정돼 있어 정주하려면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임야와 농경지를 제외하면 거주 가능한 땅은 1.02㎢(30만8,550평)로 전체의 1.4%에 불과하다. 주택 보급률도 70%에 그친다. 여기에 땅값도 치솟고 있다. 울릉군 인구의 70%가 모여 사는 울릉읍에선 최근 한 주택이 3.3㎡당 5,760만 원에 거래됐다. 서울 등 수도권 주택 가격과 맞먹는다.
교육과 복지, 문화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울릉도 초ㆍ중ㆍ고교 수는 6곳에 불과하다. 아이들은 중학교 진학 때쯤이면 대부분 육지로 나간다. 의료기관도 공공보건기관인 울릉군 보건의료원과 민간 한의원 1곳, 치과 1곳이 전부다. 영화관이나 공연장 등 문화시설은 언감생심이다. 6년 전 세 아이와 함께 섬에 정착한 백운배(47)씨는 “물과 공기가 깨끗하고, 자연이 아름다워 섬에 왔다”며 “섬 생활이 만족스럽지만, 아이가 아픈데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 때가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울릉군도 정주여건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5년 12월 개항을 목표로 울릉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개항으로 교통 환경이 개선되면 주민들이 하루 만에 육지에 다녀올 수 있는 ‘일일 생활권’이 가능해진다. 그러면 관광객도 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 안전을 위해 울릉소방서(2025년)와 울릉경찰서(2026년)도 잇따라 건립된다.
군은 노후주택 개량 등 정주여건 개선을 담은 ‘울릉도ㆍ독도 지원 특별법 제정’도 적극 추진한다. 정부도 ‘가고 싶은 K관광섬 육성 사업’ 대상지로 올해 울릉도를 선정해 4년간 120억 원을 투입한다. 정부가 주최하는 ‘섬의 날’ 행사도 올해 8월 울릉도에서 열린다. 남한권 울릉군수는 “2025년 공항 개항을 앞두고 정주여건을 개선해 인구를 늘리겠다”며 “특히 청년행복주택 건립과 지역 특화 일자리 창출 등 젊은 세대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