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의 대외 이미지가 극도로 악화됐으며 글로벌 영향력은 물론이고 구소련 시절 연방을 구성했던 주변 국가에 대한 '소프트 파워'(Soft Power)마저 종언을 고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소프트 파워란 군사·경제력 등이 아닌 해당 국가의 문화와 인류보편 가치에 대한 추구 등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을 말한다. 러시아가 21세기 최초의 침략국가 이미지를 뒤집어쓰는 바람에 과거 러시아에 호의적이던 주변국에서도 혐오국으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갤럽은 14일 내놓은 자료에서 구소련 붕괴 이후 주변국의 신망을 얻기 위해 러시아가 펼쳐온 '소프트 파워' 외교가 바닥을 드러냈으며, 구소련에 속했던 국가 가운데 러시아에 호의적인 나라는 2개국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갤럽은 그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위대한 러시아'의 위상을 과거 소련 연방국가에 대한 특권적 영향력(privileged influence)에서 찾았으나,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러시아에 대한 주변국의 존경심은 자취를 감췄다고 평가했다.
갤럽에 따르면 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11개국 가운데,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러시아에 대한 우호적 여론 비율이 50%를 넘는 국가는 6개에 달했다. 그러나 침공에 따른 이미지 악화로 모든 국가에서 우호적 여론이 급락했으며, 지난해 기준 지지 여론이 50%를 넘는 곳도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두 곳으로 줄었다.
갤럽은 전통적으로 친러시아 성향을 보인 4개국 민심이 돌아선 것에 특히 주목했다. 아르메니아, 몰도바,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이 해당국인데 이곳에서는 최근 1년간 반러 여론이 급증했다. 아르메니아의 경우 러시아에 우호적이던 비율이 45%에서 32%로 13%포인트나 하락했으며 카자흐스탄(55%→29%), 아제르바이잔(60%→23%)에서도 해당 비율이 크게 하락했다. 이들 국가에서의 반러 정서는 우크라이나에 가했던 것처럼 러시아가 국익을 위해 아무 때라도 침략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된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갤럽은 러시아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구소련 연방국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의 대러 인식도 악화했다고 밝혔다. 이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은 러시아 민족의 자부심을 강조하며 친러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는 비율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갤럽은 러시아의 소프트 파워가 위축되면서 자연스레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과 러시아에 대한 '긍정 비율'과 '부정 비율'의 격차를 비교한 결과, 11개 국가 가운데 러시아의 소프트 파워가 미국보다 강한 곳은 2개국에 불과한 반면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을 포함한 9개 국가에서는 미국이 우세를 보이는 형국으로 변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