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병원 의사 없는데, 보톡스 배우는 소아과 의사들

입력
2023.06.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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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의가 주축이 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어제 ‘소아청소년과 탈출(노키즈존)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를 열고 회원들에게 미용시술과 성인병 관리 방법을 교육했다. 아무리 경영난에 시달린다지만, 대놓고 ‘돈 되는’ 진료를 하겠다고 나서는 의사들에게 최소한의 직업윤리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이 한 명이라도 더 치료하려고 고군분투하며 소청과 진료실과 응급실을 지키고 있는 동료 의사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다.

학회에서는 보톡스와 고지혈증의 핵심 정리, 당뇨병과 비만 치료 실전 등의 내용이 공유됐다고 한다. 여차하면 소청과 문 닫고, 환자 많고 돈 되는 다른 진료과로 바꾸겠다는 공개 압박으로 비친다. 30년째 바뀌지 않는 의료수가, 출산율 하락의 문제는 크다. 그러나 명칭에 ‘노키즈존’이란 논쟁적 단어까지 붙여가며 시위적 성격을 다분히 드러낸 이 학회에 700여 명이나 모였다는 현실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소청과 내려놓겠다는 의사들에게 아이 건강을 맡기고 싶은 부모가 얼마나 있겠나.

전국 아동병원 10곳 중 7곳은 향후 5개월 안에 야간·휴일 진료시간을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의사 감소가 가장 큰 이유다. 남은 의사들은 일주일에 78시간씩 일하며 버티고 있다. 골든타임 안에 응급실로 이송되는 소아 중증외상 환자는 4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나왔다. 역시 의사 부족이 주된 원인이다. 1, 2, 3차 소아의료체계가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아동병원은 의사가 없다는데 소청과 개원의들은 미용시술을 배우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방치한다면 언제 또 소중한 아이들을 잃게 될지 모른다.

정부가 소아의료 개선대책을 내놓은 지 4개월이 됐지만 부모들은 여전히 소청과 ‘오픈런’에 소아응급실 ‘족보’까지 공유하고 있다. 개원가의 경영난 호소에 정부는 실질적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 불합리한 수가 개선은 물론이고, 인력 불균형의 근본 원인을 찾아 소아의료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청진기 대신 보톡스 잡는 소청과 의사가 더는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