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인류재앙” 수학 천재서 폭탄 테러범 된 ’유나바머’ 카진스키 사망

입력
2023.06.11 08:56
23면
하버드대 출신 최연소 수학 교수
“기술 발전은 막아야” 주장하며
20년 가까이 연쇄 우편 폭탄 테러

미국의 악명 높은 폭탄 테러범, ‘유나바머(Unabomber)’ 테드 카진스키(81)가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하버드대 출신의 앞날이 창창한 천재 수학자였던 그는 “현대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을 중단시키겠다”며 17년간 우편으로 사제폭탄을 보내며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10일(현지시간) 카진스키가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연방교도소 의료센터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카진스키는 이날 오전 자신의 감방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됐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의 대학과 항공사 등에 소포로 사제폭탄을 보내 항공사 사장과 광고회사 임원, 목재 산업 로비스트 등 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별명인 유나바머는 대학을 뜻하는 영어단어의 앞 글자 'Un'과 항공사를 뜻하는 영어단어의 앞 글자 'a', 폭탄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의 'Bomber'를 섞어 FBI가 만들었다.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16세 때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한 수학 천재는 어쩌다 연쇄 테러범으로 전락했을까.

카진스키는 24세 때인 1967년 UC 버클리 사상 최연소 수학 교수가 되는 등 학계에서 인정받았지만, 2년 후 돌연 그만두고 몬태나주에 오두막을 지어 문명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가족과도 연락을 끊은 채 직접 만든 양초를 쓰고, 사냥과 농사로 자급자족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의 직접적인 계기는 이 시기 몬태나주 산림지역의 생태계 파괴와 개발에 대한 분노로 추정된다.

다만 하버드대 재학 시절 참여했던 중앙정보국(CIA)의 냉전시대 스파이나 반체제 지식인 등을 염두에 두고 심리적 학대를 가하는 ‘모욕주기’ 실험이나 성공에 대한 가족의 압박이 그를 정신이상으로 만들었다는 등의 분석도 있다.

어떠한 증거도 남기지 않은 채 17년간 계속되던 그의 범행은 1995년 각 언론사에 보낸 ‘산업사회와 미래’라는 제목의 3만5,000단어 분량의 선언문으로 꼬리가 밟혔다.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류의 재앙이 된다며 혁명을 통해 산업사회를 전복해야 한다는 글을 두고 카진스키의 동생은 형이 쓴 것 같다고 제보했고, FBI는 1996년 그를 체포했다.

재판 과정에서 카진스키는 정신분열증을 주장하자는 변호인을 거부하고, 모든 범행을 인정했다. 법원은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카진스키의 범행은 이후 폭력으로 주장을 설파하려는 급진적 환경주의자, 또는 다른 형태의 테러범의 모방 대상이 됐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77명을 죽인 테러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빅은 범행 직전 그를 거론하며 ‘범죄 선언문’을 올렸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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