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송프로그램이 있다. 두부를 처음 먹어보는 듯한 '오늘의 출연자'가 무언가 감탄하는 말을 하자, 화면 아래쪽에 번역된 자막이 흐른다. "두부가 구름처럼 폭신하다"라고? 출연자가 뭐라고 했기에 두부를 폭신하다고 번역한 것일까? 원어의 뜻이 무엇이었든 두부를 두고 폭신하다고 해도 될까? 여러모로 궁금해진다.
한국말에서 부드러움을 그리는 표현은 다채롭다. 딱딱하지 않은 소프트아이스크림, 아기의 보들보들한 살갗, 강아지 털 등의 느낌을 '부드럽다'고 한다. 깃털 베개나 이불처럼 푸근하게 부드럽다면 '폭신하다, 푹신하다'라고 하는데, 이 말에는 어느 정도 탄성이 전제된다. 채소나 고기가 부드럽다면 '연하다'고 하고, 물기가 많은 반죽이나 땅을 두고는 '무르다'고 한다. 촉감이 매끌매끌한 스카프나 손을 탄 팽이 등은 '매끄럽다'로 말하는데, 반들반들하게 잘 닦인 복도뿐만 아니라 그처럼 저절로 밀리어 나갈 정도로 잘 쓴 문장에도 매끄럽다고 한다. 한편, 귓불을 가뿐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미풍은 '가볍다'로 표현한다.
촉감만이 아니다. 저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산의 곡선은 '완만하다'고 한다. 옅은 빛과 색, 기꺼이 배경이 되어주는 음악, 잔잔히 퍼지는 꽃향기는 '은은하다'로 말하는데, 장면에 따라 '그윽하다, 아득하다, 아련하다, 어슴푸레하다' 등이 대신한다. 아직 가녀린 나뭇가지는 '약하다'고 하고, 비슷한 강도라도 혹 마음이 그러하다면 '여리다'란 말로 쓴다. 넓은 마음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해해 준다면 '관대하다, 너그럽다, 넉넉하다'란 말로 쓴다. 잘 익은 포도알이나 탱글탱글하게 피어나는 버들강아지에 대해서는 '몽글몽글하다'라고 하니, 부드럽다는 표현의 끝은 어디인가?
외국어와 외국어는 일대일 관계가 아니다. 영어 'soft'가 덮을 수 있는 범위더라도 한국말로는 맞는 말이 따로 있다. 어떤 것은 딱딱함의 반대편에 있고, 어떤 것은 억세거나 단단한 것의 짝이 된다. 엄격함 또는 강함에 맞서는 부드러움도 있다. '말랑말랑하고 물렁물렁하며, 이들이들하거나 야들야들하고, 때로는 나긋나긋하면서도 반들반들하며 보들보들한' 등 한국말에는 눈앞의 상태를 보는 것처럼 그려내는 특별한 표현이 충분하다. 이제 다시 방송의 자막을 소환해 본다. 과연 두부가 구름처럼 폭신한가? 두부에 탄성과 회복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무른 두부는 몰랑몰랑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