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엄마도 어떻게 아이를 이끌어야 할지 배우지 않으니깐요." 배우 라미란이 엄마의 성장통을 한없이 절절하게 표현해냈다. 그 역시 한 아들의 엄마이기에 자식을 위해 평생을 바친 영순을 이해하고 또 가슴 깊이 느꼈다.
최근 라미란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본지와 만나 JTBC '나쁜엄마'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나쁜엄마'는 자식을 위해 악착같이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엄마 영순(라미란)과 뜻밖의 사고로 아이가 되어버린 아들 강호(이도현)가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가는 힐링 코미디다. 극중 라미란은 아들을 위해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영순의 인생사를 깊은 연기 내공으로 풀어내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이날 차기작 준비 중인 라미란은 인터뷰 현장에 탈색 머리로 등장해 취재진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제니 머리라고 하더라"면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나쁜엄마'는 1회 3.5%로 시작해 최종회 12%까지 올랐다. 대중은 배우의 호연과 좋은 이야기에 열광했고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라미란 역시 인기를 실감한다면서 지인들로부터 타 작품과 달리 유독 연락이 많이 왔다고 밝혔다.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 이후 수많은 작품을 했지만 라미란은 방영 다음날 오전 시청률을 검색하면서 여전히 대중의 반응을 궁금해하고 또 기다린단다. 가장 인상 깊었던 반응을 묻자 라미란은 "엄마로서 공감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실제 누군가의 엄마인 만큼 라미란의 가족 반응도 궁금해졌다. 과거 라미란은 꾸준히 가족들이 자신의 출연작을 보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라미란은 "아이들은 제게 관심이 없다. 오히려 너무 편하다. 친한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끄럽다. 관심 안 가지는 게 편하다. 남편도 안 본다"고 말했다.
마지막 회에서 영순은 사랑하는 아들 옆에서 고요히 죽음을 맞이한다. 평생 아들을 위해 살았던 영순에게 가장 평화로운 밤이 생애 마지막 날이 됐다. 라미란은 이를 두고 "최고의 결말"이라면서 "살아있는 것만이 해피엔딩은 아니다. 저는 되게 만족한다. 그렇지 않은 결말이었다면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다. 라미란에게 이번 작품은 매 순간 매 순간 감동을 남겼다. 기구한 삶을 사는 인물이 아들의 사고 이후 느끼는 사소한 행복, 벅차오르는 감정 등을 다시 알게 되고 배우 역시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됐다.
실제로 어떤 엄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저는 정말 좋은 엄마다. 영순을 최대한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실제 인간 라미란으로서 봤을 땐 상상도 못 할 일"이라면서 "어떤 엄마도 어떻게 아이를 이끌어야 할지 배운 적이 없다"고 인물을 이해하려고 했던 지점을 짚기도 했다. 라미란의 말에 따르면 영숙이 강호에게 하는 행동은 그 시대 부모들에겐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세하게 표현된 대본이 라미란의 감정 몰입을 도왔다. 대본 속 영순의 과거와 서사를 읽으면서 라미란은 더욱 독한 마음을 먹기도 했다.
지난해 드라마 '내과 박원장', 영화 '정직한 후보2' '컴백홈'에 이어 '나쁜엄마'까지 라미란은 열일 중이다. 특히 아직까지 '시민 덕희' '하이파이브' 공개를 앞두고 있다. 다작의 아이콘인 만큼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작품을 선택할 때 대본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또 다음이 궁금한지를 보고 골라요. '나쁜엄마'는 섬세하면서도 너무 재밌는 포인트들이 많았죠. 처음부터 쭉 관통하는 것이 있거든요. 또 영순이라는 인물의 서사가 펼쳐지니까 배우로서는 욕심이 났습니다."
모자(母子)로 만난 이도현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라미란은 이도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또래 친구들 중에 그 정도의 깊이를 표현하는 친구는 처음 봤다. 너무 좋았다. 전작들을 봤는데 20대인 줄 몰랐다. 너무 아이 같지 않고 너무 아저씨 같지도 않다. 강호가 되게 어려운 역할이다. 검사, 고등학생, 일곱 살 아이의 역할도 해야 한다. 이도현이 딱 떠오르더라. 만났는데 역시나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라미란은 이도현과 연기할 당시 서로 눈으로 감정을 주고 받았다면서 "어느 순간 서로의 눈물 버튼이 된다. 이도현이 세 작품을 동시에 하고 있었는데 너무 피곤해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촬영장에서 스스로 힐링하고 있다더라. 너무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라미란과 이도현은 함께 촬영하는 장면에서는 유독 눈물을 참아야 했다. 짙은 감정신 속에서 인물에 몰입하다 보니 대본과 달리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는 비하인드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라미란이 걷는 그 길에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있다. "아직도 언니들이 주름잡고 있어요. 엄정화 선배님, 김혜수 전도연 언니도 아직도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요. 저는 너무 감사해요. 항상 언니들보다 나이 많은 역을 한다는 게 그렇지만.(웃음) 저는 사랑받는 역할을 거의 못해봤어요. 가능성은 있으니 좋은 대본을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