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1개월 넘게 계속되는 대규모 산불의 여파가 국경을 뛰어넘어 미국 한복판에까지 미쳤다. 산불 연기로 미국 일대의 대기질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1억 명에 달하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경보가 내려졌다. 특히 뉴욕에서는 대기질 지수가 측정 이래 최악을 기록했고, 곳곳에서 “외출을 자제하라”는 당국의 경고도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7일(현지시간) 뉴욕시 맨해튼, 시러큐스 등의 공기질지수(AQI)가 한때 400 넘게 치솟았다고 에어나우를 인용해 보도했다. 관련 지수는 100만 넘어도 호흡에 해롭다고 보는데, 이를 훨씬 웃돈 것이다. 신문은 “(이 수치는) 1999년 환경보호국이 대기질 측정을 시작한 이후 최악”이라고 덧붙였다. 뉴욕주의 대기질 지수는 전날부터 이틀 연속 악화하며 세계 최악의 대기오염 도시로 꼽히는 인도 뉴델리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앞질렀다. 캐시 호철 뉴욕주지사는 “공기가 평소보다 8배는 나쁘다”며 “‘비상 위기’가 며칠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종일 어둡고 뿌연 오렌지빛 연기가 자욱한 뉴욕에서는 일부 항공편과 스포츠 경기·뮤지컬 등이 취소됐고, 일부 학교는 아예 휴교했다. 시민들은 팬데믹 시절처럼 다시 마스크를 꺼내 들었다. 미국 기상청의 기상학자 마이크 하디만은 “도시가 ‘화성’처럼 보이고 시가(cigar) 냄새가 난다”고 NYT에 말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캐나다 산불에서 비롯된 연무가 점차 남하하면서 뉴욕뿐 아니라 미국 북동부와 중서부, 동부 연안에 사는 1억 명 이상의 주민을 상대로 대기질 경보를 발령했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필라델피아와 워싱턴DC 등은 어린이, 노약자 등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의미의 ‘코드 레드’를 발동, 가능하면 실내에 머물라고 권고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트위터에서 “위험한 대기오염 상황에서 미국인, 특히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이들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지방 당국의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평소 맑은 하늘을 자랑하던 미국 동부 지역의 대기오염은 지난달부터 캐나다 퀘벡주 일대에서 이어지는 산불의 결과다. 캐나다 정부는 현재 414곳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있고, 이 중 239곳은 불길이 ‘통제 불능’ 상태라고 밝혔다. 이번 산불로 이날 기준 380만㏊(약 3만8,000㎢)의 캐나다 국토가 소실됐다. 남한 면적(약 10만㎢)의 3분의 1을 넘는 규모다.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될 조짐도 보인다. 오는 12일 이전에는 비 예고가 없는 만큼 당분간 화재를 진압하기가 어려워서다. 캐나다 산림청의 마이클 노턴은 “기후변화가 산불의 빈도와 강도를 늘렸고, 이에 따라 산불이 지속되는 기간도 길어질 전망”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전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앞서 인간이 화석연료를 대폭 줄이지 않을 경우 더 많은 산불이 일어날 것이라는 연구를 내놨다.
이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은 사태 해결을 위해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이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라 지시함에 따라 600명 이상의 소방관과 장비를 캐나다에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대기오염은 기후 위기가 삶과 지역사회를 흔드는 방식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심상치 않은 사례”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