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타고 부산 가는 거랑 큰 차이가 없잖아요?”
이소정(26)씨는 올해 초 입사를 1주일 앞두고 친구와 가벼운 마음으로 도쿄로 3박 4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부담이 있었다면 즉흥적으로 가지 못했겠죠.” 일본여행이 국내여행과 비교해 물리적· 심리적 장벽이 없었다는 얘기다.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기가 도쿄보다 더 쉬웠어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서울에 머물고 있는 마쓰다 코토노(25). 그는 양국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한국의 길거리에 쓰레기가 좀 더 많은 걸 빼면 거의 없다”고 답했다.
코로나19 방역 제한이 풀리며 한·일 양국 간 관광 교류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올해 1~4월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206만7,700명으로 전체 방일 외국인 중 압도적인 1위였다. 한편 같은 기간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48만1,920명으로 전체 방한 외국인 중 가장 많았다. 양국 모두 2030세대가 주도한다는 게 공통 흐름이다.
‘겨울연가’를 비롯한 한국의 멜로드라마에 열광하던 한류 1세대는 대다수가 중장년층. 하지만 요즘 일본인의 한국여행은 2030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올 4월까지 한국을 찾은 일본인 중 절반가량(46.5%)이 40세 이하 여성이었다. 이들의 관심은 K팝, K드라마뿐만 아니라 K뷰티, K미식 등 한국문화 전반이다.
지난달 31일 명동에서 만난 구로키 히데미(30)는 요즘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한국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유행이라고 했다. 2박 3일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는 홍대 앞에서 간장새우로 식사를 하고, 한강공원에서 진로 소주를 마시고 광장시장에서 칼국수를 먹는 패턴을 택했다. 정보를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 "코네스트(한국여행정보 통합사이트)에 들어가면 길 찾기, 맛집 검색에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검색해 보면 (일본어로) 식당 위치와 메뉴뿐만 아니라 대기 상황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잠실 롯데월드에서 만난 20대 여성 유우카는 놀이공원 일정이 끝나면 홍대에 가서 ‘닭한마리(칼국수)’를 먹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여행하며 일본인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된 적이 없었을까. 유우카의 친구들은 “전혀 없었다. 음식점이나 쇼핑센터에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많아서 오히려 놀랐다. 120퍼센트 만족”이라며 밝게 웃었다. 일본 관광객들의 급증은 상인들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롯데월드 인근 한 교복대여점 직원은 "젊은 외국인 사이에서도 놀이공원 교복 차림은 ‘국룰’(표준을 의미하는 속어)"이라며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겨울 방학기간 이용객의 90% 정도가 일본인이었다"고 귀띔했다. 가까운 거리라 짧은 일정으로 즉흥적으로 여행 오는 경우도 많다. 마쓰다 코토노는 “보통 금요일 저녁 비행기로 와서 일요일 오전 비행기로 돌아간다”며 “좋아하는 아이돌의 고향을 찾아가거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지방에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방역 규제 해제, 가까운 거리, 서비스 편의성 등에 더해 양국 관계 개선으로 인한 심리적 저항감도 낮아지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한국관광데이터랩의 ‘한국관광 긍·부정 점유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67%까지 떨어졌던 일본인들의 긍정 언급은 올 2월 87%까지 상승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일본인 관광객 193만 명 유치를 목표로 잡고 있다. 윤혜진 배화여대 글로벌관광콘텐츠과 교수는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홍보에 집중한다면 양국의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일본인의 한국여행 증가와 한국문화 소비라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 방역 해제 이후 일본 관광이 폭증하는 가운데 한국인들은 일본의 소도시로까지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SNS에 ‘#일본소도시여행’을 검색하면 생소한 일본 지명이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한국인이 없는 곳에서 좀 더 일본다운 일본을 느껴보고 싶다’는 심리의 반영이다. 저가항공사(LCC)들의 일본 지방공항 취항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도쿄(나리타), 오사카, 후쿠오카, 나고야 등에 취항하고 있는 제주항공은 이달부터 오이타와 히로시마에 추가 취항할 예정이다. 이미 티웨이 항공은 구마모토, 에어서울은 기타큐슈에 취항 중이다.
지난 1월 도쿄에서 ‘선라이즈 이즈모 세토’라는 침대열차를 이용해 시코쿠의 다카마쓰와 마쓰야마를 다녀왔다는 서진호(20·대학생)씨는 “개인적으로 철도에 관심이 많은데 일본은 한국보다 철도가 다양해 새로운 경험을 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대도시에 한국인들이 몰려 있는 점도 지방 도시를 관광지로 선택한 이유로 꼽았다. 올해 2월 에히메현 이요시에 다녀왔다는 박소정(24· 대학생)씨는 "시모나다역이 유명하다고 해 기차여행을 했는데 이곳을 제외하면 정보가 거의 없는 곳"이라며 "언어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관광 명소보다 현지인의 생활상이나 마을 모습을 즐기는 편이라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다시 '노재팬 운동' 같은 정치·외교적 변수가 생긴다면 한일 관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서진호씨는 "한일관계와 한국인과 일본인의 관계는 개별적인 것이라 생각한다"며 "일본 문화를 향유하는 것과 정치를 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박소정씨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기시다 정부의 행보는 도저히 긍정할 수가 없다"며 "내면의 양심에 의해서든 주변의 시선에 의해서든 눈치를 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변정우 경희대 관광대학원 교수는 "기성세대가 문화적으로 일본이 앞서 있다고 생각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데 조심스러운 반면 2030세대는 자기표현에 거침이 없어 일본 관광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혜진 교수는 "코로나19를 거치며 근거리, 가성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해외여행 트렌드가 변화했는데 젊은이들이 일본이 이에 부합하는 여행지라고 판단한 만큼 일본여행 선호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