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임명을 두고 용산 대통령실과 서초동 대법원 사이 기류가 심상치 않다. 대법관추천위원회가 7월 퇴임하는 대법관 2명의 후임 후보자 8명을 대법원장에게 추천하자, 기다렸다는 듯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언론 보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법관 임명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명료하다. 딱 한 문장이 헌법에 적혀 있을 뿐이다.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104조 2항)는 조항이 전부다. “이 사람이 적임입니다”라고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은 국회에 “이 사람 어떻습니까”라고 의견을 물어 동의를 얻은 뒤 도장을 찍으면 된다는 얘기다.
그런 헌법에 제청 거부와 관련한 조항은 따로 없다. 교과서 등에서 설명하는 이유는 이렇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해' 혹은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가 자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등이다. '부하가 아닌' 대법원장 고유 권한을 대통령이 함부로 무력화할 수 없도록, 대한민국 최상위법이 제청권자와 임명권자를 명확하게 구분해 놓은 것이다.
사실 대법관으로 누가 적임자인지, 대통령과 대법원장 생각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지 갓 1년 넘었고 전 정권의 사람인 대법원장의 임기가 몇 달 안 남은 지금 상황이라면 이견 조율 역시 쉽지 않을 공산이 크다. '대통령 뜻에 맞는 이'를 알아서 제청해줄 가능성이 떨어지니, 언론을 통해 대통령 뜻을 전달하겠다는 의도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역시나 대법관 제청에 앞서 대통령 거부권을 운운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사법부 독립성과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위헌적 행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실은 당장 개입 의도를 부인하고 있지만, 기자 경험상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나지 않는 법'이다.
거부권이 거론되는 이유 자체도 마뜩잖다. "대법관의 자질이나 도덕성이 떨어지는 인사들이 후보에 다수 속했다"는 우려였다면 그나마 들어줄 만한데, 우리법연구회 출신 등 특정 후보의 이념 성향 때문이라고 한다. 이념 편향에 대한 걱정이라는데, 결국엔 대통령 뜻에 부합하지 않는 후보를 제청할 생각을 접어두라는 얘기다. 하지만 사법부의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대통령의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1년여 전, 윤석열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 중 12명이 교체된다며 사법부 내 보수 색채 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라 제기됐다. 이번에 바뀔 대법관까지 포함해 3명의 대법관이 김명수 대법원장이 제청할 수 있는 몫이다. 나머지 9명은 어차피 윤 대통령이 임명할 신임 대법원장을 통해 교체될 사람들이다.
대통령실 경고에도, 대법원장이 '특정 후보자'를 제청한다면 대통령은 반려 혹은 임명 보류를 할 것이란 얘기도 들려온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검찰 출신이 대한민국 국방과 외교, 행정을 지휘하는 것과 재판에 평생을 바친 법조인이 대법관을 하는 것, 어떤 게 더 자연스러운지 문득 묻고 싶어졌다. 대통령이 대법관으로 '내 사람'만을 고집하고, '내 뜻에 맞게' 대법원을 장악하려 한다면 그건 지지율이 고작 40% 정도인 대통령이 부리는 과도한 욕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