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했던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일부 선수가 대회 도중 음주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각 구단(한화 제외)을 통해 경위서를 제출받아 선수 3명의 음주 사실을 확인했고, 당사자인 김광현(SSG) 이용찬(NC) 정철원(두산)은 1일 음주 사실을 시인하며 사과했죠.
다만, 이들은 언론 보도 내용과 달리 "2라운드 진출 여부가 걸린 호주전 전날에 음주하지 않았고, 술집에서 여종업원의 접대를 받지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함에 따라 KBO의 추후 조사 등을 통해 정확한 음주 시점과 경위는 밝혀질 전망입니다.
처음 유튜브와 일부 언론이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설마?' 했던 팬들은 매우 실망했습니다. 졸전 끝에 조기 탈락한 것도 모자라 대회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국가대표 선수들이 경기 일정이 남았는데도 술을 마신 행동에 화가 날 수밖에요. 단순한 일탈을 넘어 국가대표로서 자격과 품위를 실추시킨 점에 국민과 야구팬들은 분노하고 있는 겁니다.
음주 파문이 확산하자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도 2일 사과문을 통해 "좋은 경기력만 있어서는 국가대표라고 할 수 없다"며 "책임감이 필요하고 타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과거에도 프로야구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야구 대표팀이 국제대회와 관련해 추태나 구설로 실망시킨 적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도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먼저 2000년 호주 시드니올림픽 때 '도박 파문'이 떠오릅니다. 대표팀은 이탈리아와의 1차전(9월 17일)에서 승리했지만, 홈팀 호주와 2차전(18일)에서 역전패(3-5)를 당한 후 그날 8개 구단 사장단이 마련한 회식을 끝내고 밤 11시쯤 시드니 시내에 있는 카지노를 찾아 도박을 한 사실이 알려졌죠. 당시 보도를 보면 "10여 명이 카지노에 갔었다"고 해요.
파문이 일자 박용오 KBO 총재를 비롯, 프로야구 8개 구단 사장들이 20일 시드니 현지에서 긴급이사회를 열어 징계를 논의합니다. '프로야구계 제명' 등 강경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대회가 끝난 후 징계를 논의하자"는 의견이 많아 최종 결정은 미룹니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선수 관리를 소홀히 한 김응용 감독에게 엄중 경고조치를 내립니다. 그사이 한국은 쿠바(5-6)와 미국(0-4)에 연패하며 예선 탈락 위기에 몰렸지만, 뒷심을 발휘해 네덜란드(2-0)와 숙적 일본(7-6), 남아공(13-3)을 연파하며 4강에 올라 동메달을 따내며 징계는 흐지부지됐습니다. 대표팀을 이끌던 김응용 감독은 "선수들이 밤에 몰래 나가려고 마음먹으면 알아차릴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고도 하네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표팀에 발탁된 진갑용 선수가 사전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온 겁니다. 그런데 그는 양성반응이 나오자 "현역판정을 받은 후배 김상훈(기아)에게 병역 혜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일부러 소변샘플에 약물을 투입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전문가들이 "시료에 직접 약물을 넣어서는 진갑용의 테스트 결과와 같은 수치가 나올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자 궁지에 몰린 진갑용은 "체력부담이 많아 지난 시즌부터 근육강화제 등 약물을 복용했다"고 실토합니다.
'약물 파동', '거짓 해명'으로 논란을 일으킨 그는 결국 대표팀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리고 이후 KBO가 아니라 소속 구단인 삼성이 내규에 따라 벌금 200만 원을 부과하는 '솜방망이' 징계로 마무리됐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국내 프로선수들이 각종 근육강화제 등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금지한 약물을 복용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알려졌지만 현역 프로야구 선수가 약물복용 사실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었다"면서도 "KBO는 규정상 약물복용 선수에 대한 제재조항이 없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2009년 WBC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하고도 '쩐의 전쟁'이라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습니다. KBO가 경비 등을 제외한 WBC 포상금을 1인당 3,20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밝히자 선수들은 9,000만 원을 달라며 반발한 겁니다. 여기에는 선수들의 일탈에도 처벌에는 미온적이었던 KBO의 깔끔하지 못한, 허술한 일처리가 한몫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대회 기간 중 지급된 격려금 3억 원을 대회 경비에 포함시킨 것과 4강 이상의 성적을 내면 10억 원 이상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KBO) 이사회에서 이 조항이 삭제된 점에 선수들이 불만을 제기했다"며 "당초 약속이 변경되면 재결정이 내려지기 전 선수들의 의사를 묻는 절차가 없었다"는 선수들의 입장을 전했습니다. 선수협회는 KBO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선수 28명에게 6,785만 원씩 지급하는 조정안을 내 양측이 받아들이면서 일단락됐죠. 7차례 조정을 거치며 소송전이 마무리된 건 대회가 끝난 지 1년 7개월이 흐른 2010년 10월이었습니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는 강백호 선수의 껌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이 도미니카 공화국에 6-10으로 지고 있던 8회 더그아웃에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껌을 씹고 있는 강백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게 발단이었죠. 박찬호 KBS 해설위원이 "더그아웃에서 계속 파이팅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며 "지더라도 보여줘서는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국민들은 이미 답답한 경기력에다 불성실해 보이는 듯한 그의 태도에 실망을 넘어 분노했습니다. 강백호는 추후 "너무 긴장해 껌을 매회 한 개씩 입 안에 넣어 8개나 씹고 있었다"고 털어놨지만, 이미 늦었죠.
이 밖에도 프로가 아닌 전원 사회인 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 패한 '도하 참사'(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후 "부상을 안고 뛰었다"고 고백해 역풍을 맞았던 나지완(KIA)의 병역 면제 자격 논란(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 때마다 야구대표팀은 크고 작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인 데다가, 그중에서도 가장 출중한 선수들로 꾸려진 대표팀인 만큼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도 크기 때문일 겁니다.
박동희 야구전문기자는 지난 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음주파문을 두고 "프로야구 선수들의 생각과 행동도 딱 이 수준"이라고 혹평하며 "이번 문제를 계기로 국제대회에 나갔을 때는 상식적인 행동을 해달라는 것을 선수들이 알게끔 교육을 시켜야 된다"고 주문했습니다.
선수들도 사람인 이상 실수할 때도,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다만, 프로를 넘어 '국가대표'라는 무게감을 고려한다면 자신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더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고, 그만큼 구설과 추태 논란도 줄어들겠죠. 다음 국제대회에서는 한층 더 성숙한 야구 대표팀을 기대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