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을 둘러싸고 미국 주도의 서방 세계와 러시아, 중국 등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북극의 경제적·군사적·지정학적 중요성에 더해, 특히 최근 들어선 기후변화도 이들 간 경쟁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리는 북극 빙하가 신(新)냉전 구도를 그 어느 때보다 부추기고 있다”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는 북극 지역을 자국의 새 군사 구역으로 추가하고 싶어하는 의사를 드러냈다. 현재 러시아는 극지방과 밀접한 러시아 서극단에 해군 기지와 핵 무장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고, 노르웨이나 폴란드와의 접경지인 칼리닌그라드 지역에도 핵잠수함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리적 인접성 탓에 이미 ‘북극의 강대국’으로 불릴 만큼 북극권에서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더 강화하려 한다는 의미다.
중국도 북극을 탐내고 있다. 2018년부터 중국은 핀란드의 항구와 그린란드의 광산을 사들이는 등 ‘북극 실크로드’ 정책을 펴 왔는데, 최근엔 대형 쇄빙선을 투입해 새로운 부동항로도 개척하려 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두 국가가 북극에 힘을 쏟게 된 결정적 계기는 기후변화로 얼음이 급감했다는 데 있다. 매티 페수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FIIA) 소속 애널리스트는 “지구온난화로 빙벽이 줄어들어 북극해 일대에서 선박 운항이 용이해졌다”며 “새 항로 개척 등으로 운송 경로가 단순해져 상업 개발 및 군사작전에도 더 적합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극 장악 시 확보할 수 있는 빙하 속 천연자원도 경제적 유인이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갈수록 심화하는 신냉전 구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북극은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세력이 러시아의 군사력에 비해 취약한 지역 중 하나다. 북극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도 대러 제재를 하지 않는 곳들이 많다. 러시아가 북극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개전 후 러시아는 북극권 영토 주둔군을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북극권의 공군력과 함대, 핵잠수함, 핵미사일 기지는 여전히 건재하다. FIIA는 나토가 지난해 러시아 억제 및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을 포섭해 ‘노던 버블(북부 방어망)’을 구축하려 하자, 러시아도 그에 대응하기 위해 북극을 더 확실히 장악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북극권 긴장 고조에 따라, ‘얼음이 녹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나라들도 있다. 나토 회원국인 덴마크·노르웨이,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나토 가입을 신청한 중립국 핀란드·스웨덴 등이다. 이들 북유럽 4개국은 기후변화로 얼음길이 뚫려 러시아의 해상 군사작전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최근 각국 공군력을 함께 운용하기로 합의했다.
미국도 나토의 북극권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스웨덴 방문 일정 중 기자회견에서 튀르키예의 반대로 지연 중인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콕 집으며 신속한 승인을 촉구했다. 또 이달 1일 노르웨이에서 열리는 나토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북극권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중점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북극 패권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