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하는 여름 이야기다. 방학을 맞은 아이는 신나는 표정으로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간다. 아직도 무거운 쌀 한 가마니를 번쩍 들 정도로 씩씩한 할머니. 함께 염소를 몰고 우물에 띄워 놓은 수박을 먹고 찬물로 등목하며 오순도순 추억을 쌓는다.
사이가 항상 좋지는 않은데 이런, 아이가 울다 잠든 사이 할머니가 아이 머리를 싹둑 자른다. 봉두난발이 된 아이가 으앙 울음을 터트리고. 할머니는 비장의 무기였던 찬장 속 캐러멜로 아이 달래기에 성공. 모든 것을 주면서 가끔 배려가 너무 앞서가는 우리 할머니 모습 그대로다.
굵직한 서사 없이 할머니와 손녀의 오순도순한 일상을 그린 책인데, 묘하게 빠져든다. 장난스러우면서 정성스러운 그림이 다음 페이지를 궁금하게 한다. 유쾌한 그림일기를 보는 듯한 기분에 빠지는 책.
아이가 떠난 후 홀로 남은 할머니는 진지한 얼굴로 구구단을 공부하며 생각한다. “먼 미래에는 아플 수도 있겠지. 기억을 하나씩 다른 밭에 심을 수도 있을 테고. 그래도 오늘은 웃으며 살아간다.” 두 손을 번쩍 들고 외로움과 걱정을 훌훌 털어버리는 모습에선 삶을 긍정하는 여유가 전해진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가슴이 찡해지는데, 모든 것을 다 주는 할머니의 품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기억 한편에 저장된 할머니와의 추억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탓이다. 제7회 상상만발 책그림전 당선작. 작가 이유진씨가 건강하고 용감했던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듬뿍 담아 썼다. 겨울방학을 맞은 손녀가 할머니집에 찾아오는 장면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이번에는 더 오래 놀다 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