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은 충분히 쇄신했나

입력
2023.06.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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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관계에 방점을 두고 운영했던 관행을 통렬히 반성한다."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이 최근 조직 혁신안을 내놓으며 강조한 발언이다. 김 직무대행은 "전경련이 그간 경제, 사회, 정치 등을 포괄해 역사의 흐름을 놓치고 있었다"고 했다. 과거 국가주도 성장 체계에선 정부와의 관계가 곧 기업 성장과 직결됐지만, 10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현재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자책이었다. 오히려 국가 역할을 줄이도록 하고 기업이 혁신하도록 돕는 게 전경련의 임무라고도 했다.

김 직무대행은 그러면서 단체 성격을 연구기관으로 바꾸고 정부에 규제개혁을 촉구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하겠다고 했다. 단체명도 한국경제인협회로 변경한다고 했다.

전경련 측은 환골탈태한 혁신안이라고 자평하지만 기업들 반응은 싸늘하다. 2017년 탈퇴한 4대 그룹은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는지 살펴보겠다"고 했고, 한 회원사 기업은 "허창수 전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 때 내놓은 안과 뭐가 다르냐"는 반문을 했다. 4대 그룹이 재가입할 명분을 만들기 위한 탈바꿈에 그쳤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었다.

전경련 내부에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온다. 연구기관으로 변경하기 위해 필수인 인력 영입마저 쉽지 않다고 한다. 대학교 교수 수준인 연구자들에게 전경련은 매력적인 기관이 아닌 데다, 영입을 위한 재원마저 충분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미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의 경제단체들이 연구에 주력하고 있어 업무 중복 문제까지 예상된다. 주요 그룹 역시 삼성글로벌리서치, 현대경제연구원, LG경영연구원 등 전문 연구기관을 보유하고 있어, 굳이 전경련 손을 빌릴 필요조차 없다.

전경련은 회비의 70% 이상을 부담하던 4대 그룹 영입이 시급하겠지만, 이들이 왜 탈퇴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탈퇴 원인이 된 국정농단 사태는 결국 회원사들 방패막이 역할을 해야 할 전경련이 권력에 굴복하며 정부 나팔수 역할을 해 생긴 것 아닌가.

전경련은 이후 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인 지난해 3월 대통령실 용산 이전 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자 '대통령 집무실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의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를 내며 옹호했고, 이어 '최저임금 상승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원자력 산업 밸류체인 주요 기업 대상 설문조사' 등 정부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발간하며 사실상 정부 편에 서 있다.

전경련은 그러면서 재계를 대변해야 하는 본연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 못 하고 있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만 봐도 그렇다. 방미할 기업들을 모집하며 정부 창구 역할은 했지만, 정작 고대했던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과 반도체법 등에 담긴 독소조항 제거에 대해선 소홀했다. 주요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중 교역 악화에 대해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한일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전경련이 일본 게이단렌과 함께 미래 동반 관계 기금을 조성키로 하면서 회원사도 아닌 4대 그룹에 사실상 기금 출연을 압박하고 있다. 정부 산하기관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재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정경유착을 유도하는 단체는 더 이상 존재해선 안 된다"는 한 4대 그룹 관계자의 조언을 되새길 때다.

박관규 산업1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