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1일 첫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하자 “사고가 발생했다”며 기술적 결함을 발빠르게 인정했다. 지난해 3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시험 발사 실패 당시 숨기는 데 급급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살상무기인 미사일과 달리 위성은 평화적 목적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발사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이날 오전 9시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6시 27분 서해위성발사장에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탑재해 발사한 운반로켓 천리마 1호가 정상비행 중 2계단 발동기(엔진)의 시동 비정상으로 조선 서해에 추락했다”고 실패를 자인했다. 발사 후 불과 2시간 30분 만이다.
이어 국가우주개발국 대변인은 “천리마 1형에 도입된 신형발동기 체계의 믿음성과 안정성이 떨어지고 사용된 연료의 특성이 불안정한데 사고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세세하게 공개하며 "원인 규명에 착수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이 그간 미사일 시험발사 과정에서 보인 패턴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난해 3월 16일 화성-17형 시험 발사 과정에서 공중 폭발해 미사일 파편이 평양 논에 떨어졌지만 북한을 쉬쉬했다. 한 술 더떠 8일 후 기존에 개발한 화성-15형을 화성-17형으로 위장했고, 발사 성공을 자축하는 영상까지 대대적으로 찍었다.
반면 위성 발사 때는 정반대였다. 2012년 4월 광명성 3호 위성을 탑재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가 발사 2분 만에 공중에서 폭발하자 바로 그날 소식을 전하며 실패를 인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늘 기습적으로 발사해온 미사일과 달리 북한은 이번 위성 발사에 앞서 국제해사기구(IMO)에 기간을 예고하며 국제규범을 준수하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국가정보원도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북한이 발사 2시간 30여분만에 신속하고 상세히 발사 실패를 공개한 것은 그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줌으로써 발사의 정당성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고 정보위 여당 간사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전했다. 다만 위성과 미사일은 발사체 머리에 위성을 싣느냐, 탄두를 탑재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발사 원리는 동일하기 때문에 북한의 위성 발사는 탄도미사일과 마찬가지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북한이 그간 정찰위성 개발과정을 대대적으로 선전한 터라 발사 실패를 숨기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찰위성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확정한 ‘5대 국방과업’ 중 하나로, 북한은 일찌감치 올 4월을 개발 완료 시점으로 못 박으며 그 과정을 세세하게 공개해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18일 국가우주개발국을 현지지도하며 “4월 현재 제작 완성된 군사정찰위성 1호기를 계획된 시일 안에 발사할 수 있도록 최종 준비를 끝내라”고 지시하는 등 상대적으로 열세인 북한의 정찰능력 강화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