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31일 야간집회에서 노동절에 분신 사망한 산하 건설노조 간부 양회동씨 분향소 설치를 둘러싸고 경찰과 충돌해 조합원 4명이 연행되고, 4명이 다쳤다. 2만여 명이 참여한 본 집회가 큰 불상사 없이 마무리돼 안도하던 차에, 별도 행사에서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집회의 불법 요소가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엄정 대응하겠다고 공언한 경찰의 달라진 집회ㆍ시위 대응 방침이 고스란히 드러난 하루였다.
노조는 이날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대한문 인근에서 경고파업 결의대회를 연 뒤 오후 5시 20분쯤 자진 해산했다. 조합원들은 집회 시간도 비교적 잘 지키고, 장소도 이탈하지 않는 등 법을 위반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따로 신고한 야간문화제에서 기어이 몸싸움이 벌어졌다. 조합원 일부가 양씨를 기리기 위해 추모문화제가 열린 청계광장 인근에 분향소를 기습 설치하려 하자 경찰이 막아선 것이다. 주최 측은 추모 공간 마련 취지라고 항변했지만, 경찰은 ‘불법 시설물’로 규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관할구청의 행정응원 요청에 따라 천막 설치를 차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약 20분간 문화제 참가자와 경찰이 격렬하게 부딪혔다. 경찰은 민주노총 조끼를 입은 조합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팔다리를 잡고 한 명씩 끌어냈다. 진압당한 조합원들은 도로에 눕거나 주저앉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주최 측이 인간 띠로 분향소를 에워싸고 철거를 저지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경찰의 ‘캡사이신’ 최루액 사용 허가가 떨어졌다는 소식에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2017년 이후 6년 만에 집회ㆍ시위 현장에 투입된 최루액이었다.
다행히 경찰이 오후 7시 5분쯤 분향소를 철거한 뒤 충돌이 잦아들면서 캡사이신이 실제 발사되진 않았다. 경찰은 현장에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조합원 4명을 체포해 연행했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한 조합원은 응급 조치를 받은 후 복귀했지만, 3명은 팔이 골절되는 등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날 야간문화제는 경찰에 신고된 집회였다. 때문에 경찰이 위협 요소가 없는 시설물인 분향소를 불법으로 못 박고 강제철거까지 단행한 건 다소 과한 대응이란 비판도 나온다. 강한수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서울 한복판에 분향소를 설치해 시민들과 만나려는 시도 자체를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당초 참가자들은 문화제 종료 후 서대문구 경찰청까지 행진하기로 했으나, 경찰과 충돌한 탓에 행진 없이 오후 8시 22분쯤 자진 해산했다.
앞서 오후 개최된 민주노총 주최 대규모 도심 집회는 별 탈 없이 종료됐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오전 경비대책회의 참석 전 취재진과 만나 신고 시간을 초과하거나 차로를 점거해 과도한 교통정체를 야기할 경우 거듭 강제해산 방침을 강조하는 등 강한 대응 의지를 피력해 한때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윤 청장은 시위 진압이나 중무장한 범죄자 등을 제압할 때 착용하는 특수 복장인 기동복까지 착용하고 불법 집회에 대비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사전 집회부터 행진, 본 집회 모두 법 질서를 준수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오히려 경찰이 폭력을 유발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 같다”며 “경찰청장이 나서 특진을 내놓고, 캡사이신까지 쓰라고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