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등의 탐지망을 피해보려 했던 북한의 기만전술은 결국 자충수가 됐다. 애초 공언한 날짜보다 앞당겨 '군사정찰위성 1호기'를 쏴 올렸지만 준비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며 바다로 곤두박질쳤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31일 위성을 싣고 이날 새벽 발사된 발사체 '천리마-1형'이 엔진 이상 탓에 추진력을 잃고 서해에 추락했다고 전했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대변인은 "천리마-1형의 신형 발동기(엔진) 체계의 믿음성과 안정성이 떨어진 점 등을 원인으로 본다"고 자인했다.
북한의 이날 발사는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북한 군부 2인자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전날 "오는 6월에 곧 발사하겠다"고 밝힌 것과 달랐다. 기만책이었던 셈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의 첫 군사정찰위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 한미 등 정찰자산이 집중 감시하던 상황"이라면서 "(리 부위원장이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흘려) 노출 시간을 줄이려 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미 탐지망에 최대한 늦게 잡히기 위해 속임수를 썼다는 얘기다.
다만, 국제기구에 통보할 때는 31일 발사 가능성도 열어둬 비판 여지는 차단하려 했다. 북한은 지난 29일 일본에 "오는 31일 0시부터 내달 11일 0시 사이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일본은 국제해사기구(IMO) 지역별 항행구역 조정국이다. 장영근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미사일센터장은 "보통 다른 나라는 위성발사 때 구체적 시간을 IMO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통보해 선박 등의 피해가 없도록 한다"면서 "북한처럼 발사 예정 기간을 11일이나 설정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날짜 범위를 최대한 넓혀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렸다는 해석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차후 행동계획"을 승인한 이후 북한은 위성 발사를 목표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날림으로 준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최소 4주 이상 걸릴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북한은 불과 보름 만에 위성을 쐈다. 홍 실장은 "위성 발사장 내 건물 지붕이 하루 만에 완성되는 등 기이할 정도로 작업 속도가 빨랐다"고 말했다.
궂은 날씨도 북한에는 '악재'였다. 우리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서해 발사장에서 50㎞가량 떨어진 신의주는 6월 1일 구름이 잔뜩 끼고, 강수확률도 30%가량이다. 2일부터 9일까지 지상은 쾌청한 날씨를 보일 전망이지만, 3일부터는 제2호 태풍 '마와르'가 일본 가고시마 남동쪽 약 450㎞ 부근 해상까지 진출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미일 국방장관이 만나 북한을 옥죌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6월 2~4일)를 겨냥해 위성을 발사하려면 선택지는 31일과 2일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