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판관 포청천’을 기억하는가? "작두를 대령하라"는 호령이 쩌렁쩌렁 되살아난다. 북송 수도 카이펑의 부윤(수도의 최고행정 책임자)을 역임하던 시절의 포증(包拯)이 주인공이다. 청천은 상징이자 존칭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을 빗댄 백성이 누명을 벗고 결백을 호소하는 마음으로 불렀다. 청렴한 관리를 뜻하는 말이다. 여덟 왕조의 수도였던 팔조고도(八朝古都) 카이펑으로 간다.
기차역과 10분 거리에 포공호(包公湖)가 있다. 포청천 흔적이 두 군데 있다. 먼저 서쪽에 위치한 포공사(包公祠)로 간다. 전체 이름은 시호를 써서 포효숙공사(包孝肅公祠)다. 사당은 삼면이 호수로 둘러 쌓여 있어 통풍이 좋아 시원한 편이다. 덕소고금(德昭古今)이 걸린 문이 나온다. 청렴하고 사심 없는 포청천에 대한 무한한 존중을 뜻한다. 고금을 막론하고 포청천에 대한 존경심은 어쩌면 여전히 불법과 탈법이 판치는 현실에 대한 개탄일 지 모른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꽃이 많아 화사한 분위기다.
대전에 공평, 정직, 청렴, 엄명을 담은 공정염명(公正廉明)이 걸려 있다. 긴 시간 타오른 향불이 은은한 향기를 뿜는다. 3m 높이의 좌상이 보인다.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고 꽉 다문 입술과 매서운 눈매다. 드라마 인상 때문인지 친숙하게 느껴진다. 머리 위 정대광명(正大光明) 편액과 잘 어울린다. 생각이 솔직하며 언행이 단정하다는 뜻이다.
포청천은 안후이성에서 태어났다. 20대 후반에 과거를 거쳐 관리가 됐다. 안후이 츠저우(池州)에서 자사로 근무할 때 쓴 친필인 제산(齊山)이 있다. 현지의 명산이다. 글자를 바라보니 두 눈 똑바로 뜨고 속마음을 노려보는 듯하다.
호수 동쪽에 근무지였던 개봉부(開封府)가 있다. 호반 따라 걸으면 20분이면 도착한다. 오대십국 시대 후량(後梁)이 907년 처음 세운 이후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관청이었다. 북송이 960년에 건국했다. 9명의 황제가 168년 동안 통치했다. 수도의 관청이다. 당시 인구는 100만 명이 넘었다. 상업이 발달하고 문화가 풍부하던 황금 시절이었다. 5A급 관광지 개봉부는 천년 세월의 행정기관이 아닌 포청천을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호수를 막은 조벽(照壁)이 있고 성벽을 따라 깃발이 펄럭인다.
공생명(公生明) 비석이 나타난다. 규모가 큰 관청에 자주 등장한다. 송나라 초기에 어명으로 전국에 세웠다. 순자(荀子)에 나오는 말로 공정하면 질서가 바르다는 뜻이다. 관리가 염두에 둘 계명이며 관잠(官箴)이라 부른다. 세 글자만으로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관리라면 뒷면에 쓴 본뜻을 새길 일이다. ‘너희가 받는 봉록(爾奉爾祿)은 백성의 피땀(民脂民膏)이로다. 백성을 학대하기 쉬울지 몰라도(下民易虐), 하늘을 속일 수는 없다니(上天难欺)’라는 열여섯 글자를 새겼다.
의사청(議事廳)에서 판결이 이뤄진다. 북송 시기 부윤이 183명이었다. 평균 재임 기간이 1년도 되지 않는다. 포청천도 1년 4개월 근무했다. 실제로 드라마처럼 무지막지하게 형벌을 내렸을까.
부윤 복장을 한 포청전이 등장하는 상황극이 열리고 있다. 바깥에서 고소인이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다. 안으로 죄인을 불러들여 심문하고 엄벌에 이르는 과정을 연기한다. 판결을 내리고 작두를 대령하라 소리치면 관람객은 박수로 화답한다. 죽일 놈 떠올리며 대리만족을 느껴도 좋다. 기억 속에 그런 인간 한두 명은 있으니.
동(銅)으로 만든 작두가 3개 놓여 있다. 풀이나 약초 베는데 쓰는 기구다. 머리 모양에 따라 용두찰, 호두찰, 구두찰이라 부른다. 용, 호랑이, 개다. 황실 친인척, 고관대작, 일반 백성으로 나눠 사용했다. 인생과 하직하는 데에도 차별이 있다. 백성을 위한 개작두는 가장 날카로워서 단칼에 잘린다. 직급이 높을수록 뭉툭해 고통이 가중된다. 목이 잘리는 고통이 단번에 처리되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누구도 모를 일이다. 작두를 앞에 두고 인증 사진 찍느라 어수선하다.
회피(廻避)와 숙정(肅靜)이 재판정에 세워져 있다. 취조 중이니 조용히 하라는 명령이다. 관광객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모두 드라마처럼 통쾌하다 손뼉 치고 쾌재를 부른다. 공연이 끝나자 북송 시대 작두 사형을 상상하며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정말 포청천이 ‘작두를 대령하라’고 했을까? 역사 기록 어디에도 없다. 북송 시대 사형은 교수나 참수였다. 누군가 흥미 백배의 이야기로 각색을 했다. 원나라 시대 잡극 대본 포대제지감후정화(包待制智勘後庭花)가 최초의 주범이다. 작가는 정정옥이다. 덕분에 오늘날 드라마가 됐다.
치정으로 얽히고설킨 두 사건을 포청천이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동찰(銅鍘)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신파극에 그럴듯하게 구색을 맞춘 작두다. 참신한 발상이었다. 세월은 이야기를 덧칠하기 마련이다. 청나라 중기의 무협 소설 삽협오의(三俠五義)에 이르러 작두가 3개로 발전했다. 포청천 책사인 공손책이 착안했다는 진술까지 나온다. 역사문화전시관에 개봉부 행차 장면이 모형으로 제작돼 있다. 3개의 작두를 어깨에 걸고 병졸이 행군하고 있다.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작두가 TV 화면에 출몰해 감동을 선사했다. 역사에 당연히 존재했다는 듯 말이다.
훈련장 광장이 넓다. 역문역무(亦文亦武) 조벽이 설치돼 있다. 지혜와 무술 실력을 두루 갖추라는 명령이다. 조벽 뒤에 도교의 천경관(天慶觀)이 있다. 희귀한 문양이 뒷면에 새겨져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악진형도(五嶽真形圖)다. 천상에서 오악을 내려다보고 그린 지형이라 한다. 도교의 신 중에서 최상위인 태상노군이 만들었다. 가운데가 숭산, 오른쪽 위는 태산, 시계 방향으로 항산, 형산, 화산이다. 오악은 모두 도교 명산이다. 험준한 산을 오르려면 신의 가호가 필요했다. 도사가 입산할 때 지니는 부적이다. 오악을 여행할 때 가져가면 좋겠다.
개봉부에서 1km 거리에 대상국사(大相國寺)가 있다. 기원전 전국시대 위나라 신릉군의 고택이었다. 6세기 북제 시대에 불교 사찰이 됐다. 당나라 시대인 712년에 중건해 이름을 바꿨다. 등극 후 폐위 당했다가 다시 두 번째로 황제에 오른 예종 때다. 엄마 무측천을 잘못 만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상왕이다 황제가 됐다. 파란만장했던 황제가 대(大) 자를 붙였다. 소림사(덩펑), 백마사(뤄양), 수렴사(난양)와 함께 중원 4대 사찰이다. 산문을 지나 천왕전까지 거리가 100m에 이를 정도로 멀다. 길 사이 양쪽에 종루와 고루가 있다.
천왕전을 지나면 5m 높이의 봉긋한 자운교(慈雲橋)가 나타난다. 아래는 방생 연못이다. 다리 너머로 대웅보전이 보인다. 양쪽에 7층 8각 석탑이 세워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각 면마다 부처가 조각돼 있다. 오래된 유물은 아니다. 실내에 삼세불인 석가모니와 아미타불, 약사불이 자리 잡고 있다. 뒤로 돌아가니 전면에 관음보살이 중생을 계도하는 장면이 펼쳐져 있다.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의 53가지 구법 과정이다.
고루 옆에 수호전의 등장인물 노지심이 보인다. 도찰수양류(倒拔垂楊柳)라 적혀 있다. 나무를 뽑고 있는 조각상이다. 노지심은 승려로 지내던 중 허드렛일을 시키자 고약한 성질을 참지 못한다. 까마귀 소리가 거슬린다고 수양버들을 뽑아버린다. 노지심의 괴력을 알아본 금군 교두 임충과 의기투합해 의형제를 맺는다. 양산박의 영웅호걸을 다룬 소설이다. 송강과 몇 명을 빼면 대부분 가상 인물이다. 실제는 송강을 두목으로 36명이 모인 양산박의 도적 수준이었고 토벌군이 몰려오자 곧바로 투항한다. 북송 말기를 송두리째 뒤흔든 방랍 민란이 소설 원형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완전 주객이 전도됐다. 소설은 소설이고 역사는 역사다.
북송 화가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가 있다. 중국 10대 명화 중에서도 이름값으로 최고다. 폭 24.8㎝이고 길이 528.7㎝인 채색 두루마리 풍속화다. 카이펑 수도를 현실 그대로 진솔하고 활기차게 그렸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몰래 빼돌린 탓에 베이징 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10여 년 전 특별 전시를 먼저 보려는 관람객들이 문을 열자마자 100m 달리기로 뛰어간 일이 뉴스가 됐다. 명성을 그대로 담은 테마공원인 청명상하원(清明上河園)이 있다. 대상국사에서 걸어서 30분이면 도착한다. 입장료 120위안인 국가 5A급 공원이다.
입구에서 지도와 동선, 공연 일정이 적힌 안내문을 나눠준다. 규모와 내용에 감탄하게 된다. 전통 공연과 민간 공예, 풍물까지 보려면 꼬박 하루 종일 다녀야 할 정도다. 40만㎡니 넓어도 너무 넓다.
문화광장으로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공예가 수두룩하다. 부채와 가면, 인형, 유리 공예품에 눈길이 간다. 하나 사라고 성화가 대단하다. 입으로 불어 동물을 만들어내는 추이탕(吹糖)이 있다. 주문만 하면 뚝딱 동물이 나타난다. 판 위에 흘려 그림 그리듯 동물을 만들어내는 탕화(糖畫)도 있다. 10위안 내면 즉석에서 만들어주니 솜씨 감상은 물론이고 맛도 볼 수 있다.
“추이~빙(吹餅)”이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굵은 목청으로 고음을 내지르고 있다. 간판은 무대랑(武大郎)이다. 수호전 등장인물 무송의 친형 무식에 대한 호칭이다. 옆에 함께 장사하는 아내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고 있다. 수호전과 금병매에 동시 출연하는 ‘섹시 심벌’ 반금련이다. 시동생에게 추파를 보내고 부자와 외도하는 악처로 등장한다. 추이빙은 천하의 몹쓸 밀가루 반죽을 쪄서 만든 빵이다. 속에 아무런 내용물이 없다. 소설에서 무식의 생계수단이다.
청명상하도가 묘사한 무지개다리가 등장한다. 흐르는 강은 변하(汴河)다. 포공순시변하(包公巡視汴河)를 상품으로 만들었다. 포청천과 청명상하도를 연결했으니 나름 인기가 좋다. 대나무 뗏목인 대송죽벌(大宋竹筏)도 있다. 다리 위로 지나다니는 백성을 깨알같이 그렸다. 누군가 그림에 표현된 사람을 헤아려봤다. 모두 815명이다. 직업이나 신분도 매우 다양하다. 가축, 배, 가옥, 수레와 가마도 곳곳에 발견된다. 청명상하도 안으로 타임슬립하는 상상을 해도 좋다.
공연은 시간표에 맞춰 지정된 장소로 달려가야 처음부터 제대로 볼 수 있다. 죄인을 호송하는 마차를 강탈하는 연출도 있다. 양산박 영웅이 분장하고 나타난다. 마술이나 서커스가 곳곳에서 공연된다.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기공분화(氣功噴火)에 관광객이 몰린다. 북송 시대 카이펑이 기원이라 한다. 입에 머금은 석유를 단전의 힘으로 하늘로 날리고 불을 붙이면 불꽃이 치솟는다. 손오공 분장을 한 원숭이가 양이 끄는 수레에 타고 있다. 아이들 인기를 독차지한다. 어른도 사진 찍느라 바쁘다.
북송 시대 여성이 즐기던 마구(馬球) 공연이 열린다. 경마장 크기의 운동장이다. 먼저 기마 묘기를 선보인다. 진군 나팔 소리에 맞춰 말 위로 올랐다 내렸다 하기를 반복한다. 한 바퀴 돌 때마다 동작이 달라진다. 거꾸로 타고 달리는 장면은 아슬아슬하다. 깃발 들고 질주하는 멋진 대행진도 벌어진다.
시범을 마치고 본 공연을 시작한다. 말을 타고 골 넣는 시합, 격국(擊鞠)이라 부른다. 페르시아에서 토번(지금 티베트)을 거쳐 당나라에 전해졌다 한다. 말 타고 스틱으로 볼을 치고 골을 넣는 폴로 경기와 비슷하다. 영화 해리포터에도 나오는 경기를 북송 시대 여성이 좋아했다 하니 흥미롭다.
축국(蹴鞠) 조각상이 있다. 발로 공을 차니 축구다. 골대가 좀 다르긴 하다. 축구의 기원이 중국이라 주장한다. 아라비아 상인이 유럽에 소개했다고 부언한다. 사기(史記)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을 근거로 제시한다. 기원전 한나라의 명의 순우의가 치료한 25개의 진료 기록을 기재했다. 항처라는 사람이 지나친 방사로 탈장에 걸렸다. 순우의가 힘든 일을 하면 피를 토하고 죽게 된다고 진찰했다. 말을 듣지 않고 친구들과 평소 좋아하던 축국을 했다. 한기를 느껴 땀을 흘리더니 피를 토하고 다음 날 죽었다. 중국에서 ‘세계 최초의 축구 선수’란 명성을 얻긴 했다.
국보급 그림이 공원으로 되살아나 인산인해다. 휴일이면 하루 3만 명이 찾는다 한다. 테마공원을 여유롭게 즐기기는 어렵다. 강이 있어 눈은 덜 피곤하다. 수많은 테마 공연을 놓치고 싶지 않아 바쁘게 이동하느라 기진맥진이다. 먹거리 파는 가게도 많다. 주막처럼 생긴 쉼터도 있다. 술도 판다. 쉬어가도 좋다. 술을 마시게 되면 아마 출구로 바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