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외국인 가사노동자?..."싸니까 우리 아이 맡기라고요?"

입력
2023.05.28 07:00
서울시 하반기부터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명 시범사업
"'질 높은 양육' 국정과제 추진 중에 갑자기 '저렴한 양육'?"
"일본도 4년 동안 준비해 2017년 도입... 너무 성급"

당장 하반기부터 서울에서는 필리핀 등 저임금 국가에서 온 외국인 여성 100명이 가사노동자로 일하게 될 전망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 시범사업 후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본격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목적은 두 가지. ①저출생 해결과 ②여성의 경력단절 방지.

먼저 당사자인 엄마들의 이야기부터 들어봤다.

두 엄마 이야기 "어린이집이 제일 싸고 안전"..."외국인이라도 필요"

조수진 (39·가명) _ 서울 거주. 맞벌이. 15개월 아기 오전 8시~오후 6시까지 어린이집 보육, 그외 시간은 부부가 양육

“200만 원에 사람 쓸 수 있는 그거요? 저는 안 쓸 것 같아요. 200만 원이냐, 300만 원이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아기 맡기는 사람 구할 때 좀 더 싼 사람 구하는 게 아니라 종합적으로 믿을만한 사람을 구하는 거니까요. 언어, 아이 양육방식도 다른데 싸다는 메리트 하나만으로 우리 아이를 맡기지는 못할 것 같아요. 비용으로만 보자면 어린이집에 종일제로 보내는 게 가장 저렴하면서도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은소희 (38·가명) _ 경기도 거주. 남편 해외 근무로 혼자 13개월 아기 양육. 오전 8시~오후 3시까지 어린이집 보육, 돌봄 선생님이 오후 3~7시까지 양육

“3개월 동안 돌봄 선생님 구인했지만 못 구하다 일주일 전에 겨우 구했어요. 제가 사는 곳은 인구소멸 지역이라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외국인이라도 공급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언어 안 통해도 아이한테 다정하게 잘 대해준다면 문제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시범사업도 서울에서만 하네요. 돌봄 선생님 구하기도 쉽고 시범사업도 하고, 저는 서울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각 가정의 상황,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 외국인 가사노동자 이용에 대한 생각이 엇갈렸다. 고령화가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중소제조업이나 농·축산업처럼 가사·돌봄 분야도 외국인 인력 도입을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은 만큼 제도 설계부터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전문가들 "'질 높은 양육' 정책 추진하다가... 갑자기 '저렴한 돌봄'?"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지금, 바로”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너무나 갑작스럽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김아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약 10년 전에 엄마들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요구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엔 아이를 하루 종일 맡길 데가 별로 없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12개월 영아의 85%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만 3세 이상 유아의 취원율은 95%가 넘어요. 맞벌이 가정은 등·하원 시간에 시간제 양육 수요가 훨씬 높은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얘기가 나오는 건 현재 상황과 맞지 않죠.

더구나 정부는 '안전하고 질 높은 양육환경 조성'을 국정과제로 선정했습니다. 그래서 여성가족부가 민간 돌봄업체 등록제, 돌봄 인력 국가자격제도 도입 등 돌봄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들을 수행 중인데, 갑자기 '저렴한 비용 외국인 육아노동자'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스럽습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한다면 자격체계, 관리체계 등을 세세하게 마련해야 하는데 성급하게 논의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가사 노동 영역은 지난 70년간 비공식 영역이었어요. 4대 보험 안 되고 퇴직금도 없고 직업 비전과 사회적 인정이 없으니 노동자들이 진입을 안 한 거죠. 하찮게 여겨지니까요. 하지만 지난해부터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되면서 일자리 질이 개선될 가능성이 생겼어요. 가사노동자들이 사회적인 보호 속으로 들어온 지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습니다.

가사법 시행이 5년이 지났는데도 내국인들이 가사·돌봄 시장에 진입하지 않아서 인력이 부족하면 그때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시기상조입니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

“2017년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도입한 일본은 2013년부터 준비했습니다. 2010년 전후부터 고령사회,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해 여러 논의를 진행해 왔었고요. 우리도 준비가 선행돼야 합니다.

일단 시범사업을 중단하고 제대로 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봐요. 이미 다른 국가에서는 저출생, 여성 경력단절 해결책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죠. 민관위원회 등을 만들어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3, 4년 정도 논의하는 동안에는 정부의 아이돌봄 서비스, 지자체의 가사서비스 지원 등을 확대해 돌봄 서비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해 나가야 하고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문제가 공론화된 건 10개월도 채 안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건의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올해 3월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널리 알려졌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에 대해 "관계 부처가 강하게 나가달라"고 주문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부모는 '돌봄 질'이 중요한데... 76만 원→100만 원→200만 원 비용 계산만

이처럼 갑자기 진행된 외국인 가사노동자 이슈의 모든 초점은 "싸다"는 것이었다. 오세훈 시장은 "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노동자 월급은 38만~76만 원"이라고 했고, 조정훈 의원은 "월 100만 원 가사노동자"라고 강조했다. 최저임금을 지킨 고용노동부의 안대로라면 실제로는 월 200만 원 안팎이 될 거라는 계산까지, 모든 논의가 월급으로 수렴됐다.

정작 중요한 부모들의 수요, 돌봄 서비스의 질,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와 인권에 대해서는 월급을 논한 누구도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싸니까 일단 도입하자'는 건 1차원적 접근"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또 이런 접근은 이용자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김아름 연구위원은 "요즘 부모 세대가 어떤 세댄데 돌봄의 질이 낮은 사람에게 종일 아이를 맡기겠느냐"며 "일가정 양립이 중요한 세대라 최소한의 시간만 맡기고 최대한 같이 있고 싶어한다"고 지적했다. 강정향 숙명여대 객원교수는 "2021년 연구에 따르면 가사·돌봄 분야 사용자가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비용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지와 서비스의 질"이라며 "그만큼 소비자들은 무엇보다 서비스의 '질'을 우선한다"고 밝혔다.(25일 고용노동부 주최 외국인 가사근로자 관련 공개 토론회)

앞서 이 제도를 도입한 싱가포르 등에서는 가사노동자의 노동력 착취, 폭력 등 인권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조혁진 연구위원은 “싱가포르와 홍콩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 도입은 1970년대, 대만은 1990년대"라며 "인종 차별 철폐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부족하던 시기에 도입된 제도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3년, 부모가 아이돌봄의 질을 가장 중요시하는 곳, 촘촘한 무상보육 제도로 만 3세 유아 95%가 보육기관에 다니는 나라. 우리나라는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당장 필요한 곳일까.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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