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신체 능력만 놓고 보면 인간은 비슷한 체급의 동물을 이기기 어렵다. 인간이 가진 치아나 손발톱은 한눈에 봐도 위력적이지 않다. 때문에 인간은 무력 사용에 손톱이 아닌 주먹을 사용한다. 부실한 손톱이 도구활용과 연관된 잡는 방식의 손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또 약자인 인류는 집단을 만들어 유기적 관계를 형성한다. 문명의 발생이다.
인류의 문명 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이다. 불로 인해 인류는 밤을 활용하고 추운 기후에서도 생존이 가능하게 된다. 또 화식(火食)은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도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불로 인해 인류의 생활 범위는 비약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불은 어둠과 맹수로부터 인간을 보호했다. 불을 통한 위험 극복은 정월대보름의 달집태우기나 쥐불놀이 등을 통해, 오늘날까지도 유전되고 있다.
불교는 연등(燃燈)을 밝혀 삿된 것을 물리치고 밝은 지혜를 북돋는 상징으로 활용한다. 연등을 흔히 '연꽃등'으로 이해하곤 한다. 이는 불교의 중요한 상징이 연꽃이기 때문이다. 연꽃의 특징인 진흙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품성은 청정한 수행자를 나타내기에 맞춤하다. 이로 인해 연등(燃燈)은 연등(蓮燈)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등의 연은 연꽃 연(蓮)이 아닌 불탈 연(燃)이다. 즉, 연등이란 불을 살라 밝히는 모든 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는 연등의 외연이 연꽃을 넘어 폭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 말 '동국세시기(1849)'에 따르면, 등의 종류는 연꽃등 외에도 칠성등·일월등·배등(船燈)·종동(鍾燈)·누각등·잉어등·거북등·자라등 등 매우 다양하다. 즉, 다채로운 장엄과 밝음의 차용이 핵심인 것이다. 특히 연등의 다양성이 불교국가 시대의 유산이 아닌, 숭유억불의 조선에 존재했다는 것은 연등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과는 사뭇 달랐음을 분명히 해준다.
불교의 연등회는 2020년 우리나라의 21번째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된다. 그리고 올해 개최된 연등회를 보면,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처럼 불교적인 등 외에도 용·봉황·공작·산·거북·수박·복주머니·태극기 등 다양한 연등이 형형색색의 조화경을 연출한 것이 확인된다.
연등의 핵심이 불을 통한 상징 입히기임을 이해한다면, 불교적인 연등 역시 본래는 정월대보름의 벽사의식과 무관하지 않았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고려 중기까지도 불교의 연등은 정월대보름날 밤에 밝혀졌다. 이것이 부처님오신날과 결합한 것은 1166년 백선연에 의해서다. 또 무신 정권기의 최고 실력자인 최우(최이)는 부처님오신날의 연등을 공식화시킨다. 즉, 연등이 정월대보름을 넘어 부처님오신날에까지도 행해졌던 것이다.
연등의 밝음은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상징으로 이해된다. 부처님은 인류에게 지혜의 빛으로 오신 성인이다. 이런 점에서 부처님오신날 연등을 차용한 것은 불교국가 시대에는 당연한 확장이었다.
그러나 연등에는 불교적인 의미 외에도 불을 통한 삿됨의 소멸과 행복에 대한 추구가 담겨져 있다. 이런 점에서 연등회는 전 국민의 축제이자,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무형유산인 것이다.
실제로 2001년부터 등재되기 시작한 종묘제례악이나 남사당놀이·대목장·매사냥 등은 마니아와 관련된 제한적인 무형유산이다. 그러나 연등회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넓은 외연의 확장성을 가진다. 연등만 있으면 행렬에 참여할 수 있고, 연등이 없어도 화려한 빛의 공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축제 만족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인의 참여 비율이 높은 것을 통해서도 인지된다. 즉, 연등회는 불교를 넘어서는 한국의 가장 자랑스러운 세계인의 축제이다. 연등회의 발전은 유등(流燈)과 풍등(風燈)으로까지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