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명세빈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과거 청순가련한 이미지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그에게 두 번째 터닝포인트를 선사한 것은 불륜녀 캐릭터다.
최근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명세빈은 JTBC '닥터 차정숙'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닥터 차정숙'은 20년차 가정주부에서 1년차 레지던트가 된 차정숙의 찢어진 인생 봉합기를 그렸다. 극중 명세빈이 분한 최승희는 대학생 때 서인호(김병철)와 교제했으나 서인호와 차정숙(엄정화)의 결혼으로 버림받고 이후 서인호와 외도를 저지르며 딸 은서를 낳는 인물이다.
1996년 데뷔한 명세빈은 주로 청순하고 가련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익숙한 배우다. 2021년 '보쌈' 이후 2년 만에 '닥터 차정숙'으로 새로운 시도에 나섰고 시청자들은 명세빈의 도전에 환호했다. 시청률의 고공상승으로 JTBC 드라마 역사를 새로 경신한 '닥터 차정숙'. 흥행의 주역인 명세빈은 "방송 후 스트레스가 없을 정도로 꿈 같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전성기 때 느낌을 다시 느꼈다. 그땐 제가 어렸기 때문에 지금 이 반응이 새롭다. 다시 맛보니 행복하다"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주변 반응도 뜨거웠다. 새로운 연기가 너무 좋았다는 호평이 쏟아졌고 명세빈의 만족감도 더욱 높아졌다. 차승희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산 이유에 대해 명세빈은 "차정숙은 모든 게 완벽하다. 완벽한 엄마와 와이프다. 반면 승희는 완벽해보이지만 곪고 썩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서 그 캐릭터에 공감을 해준 분들이 많다"고 느낀 바를 전했다. 명세빈 역시 달라진 시청자들의 반응에 놀라움을 느꼈다. 과거 주인공을 응원하고 악인을 비판했던 것과 달리 각 인물마다 자신의 인생을 대입하는 이들이 새롭게 느껴졌단다.
그간 청순한 캐릭터로 각인됐던 명세빈이 불륜을 저지르는 미혼모의 역할을 맡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다. 이에 명세빈은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예전부터 이런 역할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늘 같은 이미지로만 갈 수 없으니까요. 나이가 들면서 어떻게 청순가련으로만 가겠어요. 연륜이 있을수록 배우는 인생을 보여줘야 해요."
명세빈의 연기관은 단순 명료했다. 배우는 작품을 통해 캐릭터를 만나고 그 안에서 이야기와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과거부터 꾸준히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싶어 직접 감독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어 "제겐 악한 모습, 질투하는 모습이 있기에 다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닥터 차정숙'의 감독님이 저를 선택해 주셨을 때 너무 기뻤고 열심히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명세빈은 최승희의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 부던한 노력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그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연기를 하려니까 안 나오더라. '이게 아니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타당성은 머리 뿐만 아니라 감정으로 이해해야 했다"면서 "제가 가장 늦게 합류했는데 바로 촬영을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엄정화 언니, 김병철 오빠와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서 고충을 전했다.
다른 배우들과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명세빈은 최승희가 갖고 있는 콤플렉스, 트라우마 등에 대한 서사를 만들었다. 부유한 집에서 모자란 것 없이 컸지만 서인호에게 버려졌다는 상처가 지금의 최승희의 행동을 설명한다. 직접 인물의 당위성을 만들면서 명세빈은 조금씩 최승희를 입었다. "제가 최승희를 연기했기에 인물의 타당성, 진실성이 느껴졌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12회 때는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고 실제로 화가 나기도 했죠."
그러면서 "저 역시 답답했다. (최승희가) 안타까웠다. 정말 수많은 고민과 갈등, 결정이 왔다 갔다 한다. 제가 본 최승희는 핏줄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 같다. 저는 딸 소아린의 연기를 보면 너무 짠했다. 시청자들이 비판을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연기자니까 충분히 해내자'고 말해주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극 말미 최승희는 서인호와의 인연을 정리하고 요양병원을 인수하며 행복한 삶을 산다. 명세빈은 결말에 대해 만족감을 표하며 "승희는 새로운 삶을 찾는다. 미국에 가면 불륜녀로 끝나고 회피로 끝난다. 너무 감사하게도 승희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주역들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이를 두고 명세빈은 "김병철 오빠는 워낙 잘한다. 도움도 많이 받았다. 엄정화 언니도 대립하는 구도지만 매일 좋은 이야기를 한다. 팀워크가 정말 좋았다. 배우들이 내 것만 챙기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저와 언니 둘 다 크리스찬이라서 쉬는 시간에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을 나눴고 서로 믿어줬다"고 말하면서 굳은 우애를 드러냈다.
이번 작품은 웃을 수 있는 요소가 넘치지만 작품 설정상 명세빈에게는 코믹 연기를 할 수 있는 순간이 부족했다. 2004년 '결혼하고 싶은 여자'로 코믹 연기를 선보였던 만큼 명세빈의 코믹 연기 도전 욕심은 남달랐다. 그는 "코믹 연기를 할 땐 스트레스, 긴장감도 있지만 재밌다"면서 "앞으로 제 연기 인생이 달라질 것 같다. 이제 명세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고 포부를 전했다.
그런가 하면 명세빈은 올해로 데뷔 28년차를 맞이했지만 슬럼프나 공황장애를 겪지 않을 만큼 건강한 삶을 유지 중이다. "살면서 더 유연해졌어요. 이제 무게감이나 세월이 느껴져요. 그동안 잘 살았다는 게 스스로 너무 기특해요. 과거를 곱씹진 않아요. 예전에 했던 것을 비우고 습득에 집중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