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중국으로 수출하는 국내 화장품 기업은 준비 기간을 일주일 이상 줄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중국 화장품 규제기관인 국가약품감독관리국과 국장급 양자 협력 회의를 열고 수출 절차 간소화를 추진하면서다.
24일 식약처와 대한화장품협회에 따르면 그동안 수출 화장품 허가를 위해서는 중국에 직접 서명·날인한 판매증명서 원본을 내야 했지만 앞으로는 원본임이 확인된 전자 판매증명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증명서를 발급받고 중국에 직접 보내기까지 절차가 번거로워 꾸준히 개선을 요구했던 사안"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다"고 반겼다.
이처럼 식약처가 업계 지원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따로 있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이 본격화한 뒤에도 국내 화장품 업계가 여전히 고전 중이기 때문이다. 업계는 다이궁(중국 보따리상)의 수요 회복을 기다리면서도 한편에선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숙제를 풀어야 할 처지다.
이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은 1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59.3% 감소한 644억 원을, LG생활건강은 16.9% 감소한 1,459억 원을 기록했다. 중국의 소비심리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면세 사업과 현지 수익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부분 업체가 면세 사업 등 해외 매출 비중은 40~50%에 달해 타격이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중국의 수요 감소는 외국인들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한국 제품을 사는 역직구 판매액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해외 직접 판매 규모가 가장 큰 중국의 판매액은 1,527억 원으로 1년 전보다 62.1%나 줄었다. 같은 기간 중국인들이 온라인 면세점에서 구매하는 국내 화장품의 해외 직접 판매액이 60.6%까지 줄은 게 영향을 미쳤다.
중국 리오프닝에도 실적이 회복되지 않는 것은 매출 비중이 컸던 다이궁이 줄어든 탓이다. 중국에서 애국 소비를 독려하는 '궈차오(國潮)' 열풍으로 화시쯔(花西子), 퍼펙트 다이어리(완메이르지·完美日記) 등 현지 브랜드가 뜨면서 한국 화장품 수요가 줄고, 다이궁도 예전만큼 물건을 많이 가져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이 하이난 면세점을 키우면서 다이궁의 수요가 중국 현지로 분산되고 있는 것도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실적 회복이 절실한 국내 면세점이 송객 수수료율을 최대치로 낮췄다는데도 하이난으로 발길을 돌린 다이궁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최근 한중 관계도 냉랭한 분위기라 수요 회복에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다이궁이 돌아온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실적을 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만 붙으면 잘 팔리던 과거와 달리, 중국 브랜드가 현지 소비자에게 품질을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업계는 북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라네즈, 설화수 등 스킨케어 브랜드 위주로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설화수는 글로벌 앰버서더로 지난해 걸그룹 블랙핑크 로제에 이어 3월 할리우드 배우 틸타 스윈튼을 발탁해 해외 인지도를 키워나간다. LG생활건강은 올 초 미국 스타벅스·아마존 출신 문혜영 부사장을 미주사업 총괄로 영입하고 북미 사업의 운영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회사는 더 에이본의 전신인 뉴에이본과 헤어케어 브랜드 알틱 폭스를 보유한 보인카 등을 인수하며 수출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