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는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 중 면적이 두 번째로 넓다. 이 곳 저 곳 둘러보려면 최소 1박 2일은 잡아야 한다. 첫 날은 인제터미널에서 마을버스(하루 4회)를 이용해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을 여행하고, 둘째 날은 렌터카로 인제의 여러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흔히 원대리 자작나무숲으로 부르는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은 원래 소나무숲이었다. 솔잎흑파리 피해로 벌채한 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약 70만 그루의 자작나무를 심어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자작나무숲으로 성장했다.
자작나무숲에는 8개 탐방 코스와 원대임도(아랫길), 원정임도(윗길)까지 더해 총 10개 탐방로가 개설돼 있다. 그러나 코스를 어떻게 잡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입구 안내소에서 약도를 제공하고 숲해설사가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최단 거리는 원정임도를 거쳐 자작나무숲까지 돌아오는 왕복 6.4km 코스다. 여유롭게 걸으려면 원대임도(2.7km), 달맞이숲코스(2.3km), 치유코스(0.4km), 자작나무코스(0.9km)를 거쳐 자작나무숲을 돌아보고 원정임도(3.2km)로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를 권한다. 총 9.0km, 4시간가량 걸린다.
원대임도를 1시간 여 걸으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지름길인 탐험코스보다 시간이 더 걸려도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달맞이숲코스를 선택했다. 녹음과 함께 숲의 향기가 가득하다. 시원한 바람이 쉴 새 없이 살랑거리고 새소리가 어우러진 자연 만끽 코스다. 여러 종류의 나무가 섞여 자라는 혼합림을 걷는 치유코스와 자작나무코스를 거쳐 목적지인 자작나무숲에 이른다.
북유럽의 숲속에 들어선 듯 순백의 신비로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새하얀 자작나무 사이에 인디언집, 야외무대, 숲속교실, 생태연못 등이 조성돼 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건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공기마저 달콤하게 느껴진다. 자작나무숲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주차비를 내지만 동일한 금액의 인제상품권으로 되돌려 받기 때문에 무료나 마찬가지다.
읍내에 위치한 인제산촌민속박물관은 세월이 흐르며 사라지는 민속 문화를 소개하는 곳으로 계절과 세시풍속에 따른 인제 산촌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떼돈 번다’하는 말이 ‘인제 뗏목’에서 비롯했다는 설명이 재미있다. 옛날 설악산과 대암산에서 벌목한 나무는 인북천으로, 점봉산과 방태산 목재는 내린천으로 흘려보내 합강에서 떼를 엮어 한양으로 운반했다. 10~15일 걸려 목재를 운반하면 쌀 1~3가마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농부들이 1년 농사를 지어도 쌀 한두 가마 얻을 정도였으니 떼돈이나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2층 구름다리를 건너면 박인환문학관과 연결된다. 인제 출신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1926~1956)과 그의 시작품을 기리는 공간으로, 1950년대 전후 근현대 시문학 사조를 이해할 수 있게 전시실을 꾸몄다. 시인이 한창 집필에 몰두했던 1945~1948년 서울 명동의 ‘마리서사’ 주변거리를 복고 감성으로 재현한 모습이 눈길을 잡는다. 마리서사는 박인환이 부친과 이모로부터 빌린 5만 원으로 개업한 서점으로 당대 모더니스트 시인들의 사랑방이었다고 한다. 현대시의 새로운 출발과 모더니즘에 대해 열띤 의견을 나눴던 선술집 ‘유명옥’, ‘세월이 가면’ 노래가 만들어진 막걸리집 ‘은성’도 있다. 박물관과 문학관 모두 무료 관람이다.
다음 일정은 한국시집박물관. 한국 근대문학의 태동기인 1900년대부터 1970년까지 연대별로 시인과 시집을 전시해 놓았다. 열린도서실에서 손 가는 대로 시집을 꺼내 메마른 감성을 충전한다.
여초서예관은 국토교통부의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은 독특한 건물이다. 내부는 한국서예사의 대가 여초 김응현이 사용했던 붓 벼루 먹 등 유품을 비롯해 유명 사찰의 편액과 주련에 쓴 필체, 서책 제호 등을 전시하고 있다. 청음 김상헌의 ‘청음선조서간시’, 가을 금강산을 본대로 기록한 율곡 이이의 ‘풍악기소견’ 등 명품 글씨로 재탄생한 작품도 관람할 수 있다. 무료 관람.
인제스피디움 클래식카박물관은 ‘네오클래식’ 장르의 자동차를 전시한 공간으로 자동차 마니아라면 특히 좋아할 장소다. 2015년 제작된 로터스의 경량형 스포츠카 ‘케이터햄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영화에서 본 듯한 형형색색 독특한 클래식카가 즐비하다. 자동차 경주장 피니시 라인에 전시한 ‘로터스 에보라’ 스포츠카를 배경으로 시상대에 올라 트로피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래피티 아트, 3륜 콘셉트카도 볼 수 있다. 관람료는 성인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