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1~3월) 우리나라 가계 빚 규모가 14조 원 가까이 감소했다. 고금리 여파로 신용대출과 신용카드 할부 이용액이 동시에 줄어든 결과다. 코로나19 시기 급증했던 가계부채가 “완만한 축소 과정”에 접어들었지만, 연착륙까지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전 분기말 대비 13조7,000억 원 줄어든 1,853조9,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2년 4분기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분기 대비로는 지난해 4분기 말(-3조6,000억 원)에 이어 두 분기 연속 감소를 나타냈고, 전년 동기 대비로도 9조 원 줄면서 사상 첫 감소를 기록했다.
가계신용은 금융회사와 공적 금융기관이 내준 대출에 신용카드 할부액 등 판매신용을 합친 대표적 가계부채 지표다. 2020년 이후 저금리를 실탄 삼아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이 부는 등 잔액이 폭증했지만, 금리가 높아진 최근엔 서서히 줄어드는 모습이다. 박창현 금융통계팀장은 “2020, 2021년에 가계신용이 분기별 평균 32조2,000억 원, 34조4,000억 원씩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이번 1분기 감소폭은 증가 시기 규모에 비해 그리 큰 편은 아니다”라며 “완만한 부채 축소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가계신용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가계대출이 전 분기 대비 10조3,000억 원이나 줄어든 영향이 컸다. 마찬가지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폭 감소이자 3분기 연속 감소다. 상품별로 보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정책모기지 취급이 늘고 주택 거래가 회복되면서 5조3,000억 원 증가했다. 하지만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이 15조6,000억 원 급감하면서 전체 가계대출 축소를 이끌었다. 기타대출은 높은 대출금리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상여금 유입에 따른 빚 상환 등으로 6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카드사나 백화점, 자동차 회사 등 판매사와의 외상(신용)거래를 의미하는 가계 판매신용 잔액도 3조4,000억 원 줄어 9분기 만에 감소 전환했다. 연말 소비 증가 효과가 사라지고, 카드사들의 무이자 할부 혜택 축소로 신용카드 이용액이 줄어든 결과다. 분기 기준 가계신용과 판매신용이 동반 감소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은은 부연했다.
다만 이 같은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흐름이 2분기 이후에도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금리가 고점을 찍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가계대출이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월보다 2,000억 원 늘어나 지난해 8월 이후 처음 증가세로 돌아섰다. 박 팀장은 “4월 가계대출이 증가 전환한 것을 감안하면 2분기 가계부채 축소세는 다소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달 개인 신용카드 이용액이 1분기 월평균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 회복됐고, 대면 활동이 늘고 있는 점도 판매신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