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전 홍콩에서 입주 가사노동자로 일했던 인도네시아 여성 카르티카 푸스피타사리는 지금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고용주 부부는 잔혹했다. 푸스피타사리를 모욕하고 때리는 것도 모자라 뜨거운 다리미로 지지고 자전거 체인까지 휘둘렀다. 부부는 해외 여행을 떠나면서 그에게 기저귀를 채운 뒤 물과 음식도 주지 않고 5일간 의자에 묶어 놓는 악행까지 저질렀다. 홍콩 법원은 2013년 고용주 부부에게 징역형을 선고했고, 올해 2월에는 배상금 지급 판결도 내렸다. 푸스피타사리는 “내가 겪은 육체적·정신적 상처에 비하면 이들에 대한 처벌은 너무 약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1970년대 초중반부터 가사ㆍ돌봄을 주로 동남아국가 노동자들에게 맡겨온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가사노동자 인권유린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임금과 근로조건을 제도적으로 차별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두 나라는 유급 휴일 보장 및 고용주 처벌 규정을 마련해 놨지만 예외 사유가 많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16년 홍콩 비영리단체 ‘저스티스센터’에 따르면 가사노동자 18%가 신체적 학대를 당했고 66%는 착취 피해를 겪었으며 6명 중 1명은 강제노동에 내몰린 것으로 조사됐다.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71.4시간에 달했다. 싱가포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2017년 독립연구기관 ‘리서치 어크로스 보더스’ 연구에서 가사노동자 10명 중 6명이 학대 경험이 있었다. 심지어 2019년 여론조사회사 ‘유고브’가 싱가포르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선 7명 중 1명(14%)은 가사노동자에 대한 학대를 직접 목격했으며 5명 중 4명(79%)은 주변에서 학대 사건을 들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두 나라에서 가사노동자들이 인간 이하 취급을 받는 주된 원인은 ‘저임금’이다. 홍콩은 다른 업종과 별도로 책정된 최저임금을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에게 적용한다. 올해는 월 4,730홍콩달러(약 80만 원)로 법정 최저임금의 절반, 홍콩 노동자 월평균 임금의 4분의 1 수준이다. 홍콩 정부는 입주식 노동이라 주택비와 생활비가 안 든다는 이유로 저임금을 정당화하지만 일부 가사노동자들은 부엌이나 화장실에서 살면서 24시간 상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싱가포르는 최저임금 제도조차 없다. 급여는 가사노동자 송출국에서 요구하는 금액에 맞춰진다. 현지 중개업체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대체적으로 400~650싱가포르달러(약 39만~64만 원) 수준이다. 필리핀 출신이 570싱가포르달러(약 56만 원)로 약간 높은 편이고, 인도네시아 550싱가포르달러(약 54만 원), 스리랑카 497싱가포르달러(약 49만 원), 미얀마 450싱가포르달러(약 44만 원)로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은 법 테두리 안에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2019년 싱가포르에선 미얀마 가사노동자에게 속옷 차림으로 일하도록 강요하고, 깔때기로 음식물을 억지로 먹인 뒤 토하자 토사물까지 먹게 한 고용주가 처벌받았다. 해당 고용주는 과거에도 가정부 학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보석으로 풀려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그러나 잔인한 현실에서 탈출하기는 쉽지 않다. 홍콩의 경우 계약 해지 2주 이내에 홍콩을 떠나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가사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신고를 꺼린다. ‘2주 규정’은 유엔까지 나서 지적한 대표적 ‘독소 조항’이다.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들도 초기 급여 6~7개월 치가 중개 수수료로 공제되는 탓에 일터를 옮기기 어렵다. 싱가포르 인권단체 ‘홈’은 “고용주는 가사노동자를 소유물이자 도구로 여긴다”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는 현대판 노예제”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