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은 ‘제5도살장’에서 외계행성 ‘트랄파마도어’인들이 지구인의 성(gender)을 7개로 나눈다는 흥미로운 상상력을 펼쳐 보였다. 남성과 여성, 남녀 동성애자와 65세 이상 남녀, 갓난아이였다. 45년 뒤인 2014년 SNS ‘페이스북’은 사용자 옵션 성별란 선택지를 에이젠더(Agender) 등 58개로 구분했다. 페이스북 관계자는 AP 인터뷰에서 “그 기능이 아무 의미 없는 이들도 많겠지만 성소수자에게는 온 세상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해 5월 29일, 시사주간지 ‘타임(Time)’ 표지에 트랜스젠더 여성 배우 겸 드라마 제작자 러번 콕스(Laverne Cox, 1972~)가 등장했다. 한 해 전 방영을 시작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 출연해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큰 인기를 끌던 무렵이었다. 콕스는 여러 방송 작품 연기자 겸 제작자로, TV쇼 진행자로,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잇따라 수확하며 새 길을 개척, 타임이 매년 독자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후보로도 상당한 지지를 받은 터였다. 하지만 어떤 사연 때문인지 그는 최종 100인 명단에서 누락됐고, 팬들은 SNS 등을 통해 콕스를 지지하는 해시태그 캠페인(#whereisLaverneCox)을 벌였다. 그에 대한 타임의 사과성 응답이 콕스의 표지모델 데뷔였다. 주류 미디어에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첫 순간이었고, 커버스토리 제목처럼 미국 인권운동의 새로운 전선을 확인하는 시대적 전환점이었다.
콕스는 “어떤 이들은 (우리를) 아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들도 우리가 인간이란 사실은 알아야 한다. 어떤 이들은 우리를 영원히 못마땅하게 여기겠지만 나는 그들의 인간성을, 사랑하고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믿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