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별자리, 운명론, 사주(四柱), 애니어그램,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각종 심리테스트 등. 우리는 나와 타인의 성격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도구를 사용하곤 합니다. 이를 위해 몇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을 자발적으로 지불하곤 하죠.
이처럼 다양한 원리를 동원해 성격 및 심리를 측정·분류하는 관행을 두고 이견도 많습니다. 어떻게 80억 인구를 단순히 4가지(혈액형)로 나눌 수 있냐는 반문부터 출생월 별자리 12가지, MBTI 16가지 유형도 분류치곤 너무나 단순하다는 지적들 말입니다. 가장 '경우의 수'가 많다는 사주는 어떨까요. 연(60), 월(12), 일(60), 시(12)를 곱해 총 51만8,400개의 경우의 수가 있다고 하지만 인간은 51만 개의 수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인간의 DNA는 10억 개의 뉴클레오티드(Nucleotide)가 이중나선형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요. 이 패턴은 일란성쌍둥이를 제외하곤 사람마다 모두 다른 조합을 갖고 있습니다. 최소 10억 개로 나뉘는 각각 다른 개체의 인간을 혈액형이나 MBTI, 사주 등으로 쉽게 판단하고 정의하는 게 맞을까요. 그것도 몇 가지 질문이나 선천적인 요소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상하게도 이런 검사를 하면 '맞네, 맞아'라며 무릎을 탁 치곤 합니다.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한 나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듯한 해석에 격하게 공감하곤 하죠.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바넘 효과(Barnum Effect)' 또는 '포러 효과(Forer Effect)'라 부릅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이라 여기는 심리적 경향을 뜻하는데요.
바넘은 19세기 미국의 유명한 쇼맨 폴 바넘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그는 유명 서커스 설립자이자 미국의 원조 엔터테인먼트 사업가죠. 포러는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의 이름에서 유래됐습니다. 포러는 1948년 제자들을 상대로 진행한 성격 테스트 실험에서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묘사를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사실 MBTI 성격 분류나 운명을 점치는 사주쟁이들 이야기엔 애매모호한 면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누구에게나 들어맞을 수 있는 말일 때가 많아지죠.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지만 성격이 급해서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신중하지만 때로는 무모한 성격입니다', '당신의 목표 가운데 몇 가지는 비현실적입니다'와 같은 말처럼 말입니다. 이런 말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 사실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죠. 'A형은 소심하다'라고 하지만 100% 소심하지 않은 인간은 없습니다. 다만 '다소'라는 애매한 수사를 써서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모든 측정 방식이 다 비과학적이고 이를 믿는 이들은 다 우매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심리과학적으로 검증된 검사도구는 신뢰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심리학 연구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검사 도구들은 공식화된 것이고 이들은 대체로 정식 검증된 검사지로 전문가에게 결과 해석을 듣기 때문입니다. "신뢰도나 타당도가 어느 정도 인정된 도구와 아닌 것들은 구분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측정 도구들이 갖는 효용도 있습니다. 바로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있죠.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임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인 셈입니다. 이런 도구들에 지나치게 의존·맹신해 누군가를 재단하고 평가하거나 이 도구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불확실한 미래 속으로 걸어가는 인간은 늘 미래를 예측하고, 여전히 잘 알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는 '도움' 그리고 '재미'가 늘 필요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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