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3년 이상 상습 체불한 사업주를 구속기소했다. 해당 사업주는 20년 전부터 총 12차례나 임금 체불을 반복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그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노동자들을 압박해 '가짜 합의서'를 제출받아 법원에 내기도 했다.
17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수원지검 안양지청 형사3부(부장 이진용)는 전날 건설업자 A(54)씨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4월부터 2022년 7월까지 3년 4개월에 걸쳐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 6명의 임금을 체불한 것으로 조사됐다. 체불 임금 총액은 6,400만 원에 달했다.
검찰 수사 결과, A씨는 경영상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임금을 체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밀린 임금을 달라고 사정하는 일용직들을 향해 "임금? 노동청에 가서 받으라. 난 벌금만 내면 된다"는 식으로 돌려세웠다.
A씨가 '임금을 줄 바에야 벌금 내면 된다'고 배짱을 부린 것은 과거 자신의 임금체불 재판 결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가 그의 임금체불 사건을 모두 살펴본 결과, A씨는 2004년 근로자 4명의 임금 611만 원을 체불하고도 벌금 70만 원을 선고받는 데 그치는 등 지난해까지 12차례의 임금체불 사건에 대해 모두 약식기소돼 벌금형을 받았다. 벌금이 체불액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에, A씨 입장에선 벌금을 내는 게 이익이 됐다. 이런 식으로 A씨는 20년간 일용직 등 40명의 임금 1억1,300여만 원을 체불했다. 이번 사건까지 더하면 피해자는 46명, 임금체불액은 1억7,711만 원에 달한다.
검찰은 A씨의 임금체불 행위가 악의적이고 상습적인 데다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마저 불량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해 임관한 양정훈 검사는 계좌추적 등을 통해 A씨가 재산 대부분을 배우자 명의로 빼돌린 사실도 확인했다. A씨는 과거 임금체불 사건에서도 지급할 돈이 없어 임금을 주지 못했다는 식으로 변명해왔다.
A씨는 일용직 노동자를 압박해 '가짜 합의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당일 임금을 떼인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합의서를 냈다. 양 검사는 영장심사가 열리기 전에 피해자들에게 합의서 작성 경위를 물었다. 이들은 "내가 구속되면 돈을 줄 수 있겠냐"는 A씨의 압박 탓에 합의서를 써줬을 뿐, 속마음은 여전히 처벌을 원한다고 토로했다. 검사는 법원에 합의 종용 정황에 대한 의견서를 냈고, A씨는 결국 구속됐다.
A씨는 구속된 직후 뒤늦게 현금 2,200만 원을 내놓는 등 피해자 3명에게서 합의서를 받았다. 그는 합의하지 않은 나머지 3명에 대한 임금체불 혐의로 법정에 선다. 임금체불 사건은 합의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다. 검찰은 피해자들이 못 받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대지급금 제도와 법률구조공단을 통한 민사소송 안내 등 후속 절차를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