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발발 후 사실상 국가 비상사태 수준의 조치들을 취하며 군비 증강의 브레이크를 풀어 버린 폴란드가 최근 우리나라에 KF-21 전투기 공동개발 참여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 폴란드 측에서 이러한 제안을 꺼낸 주체는 국영 방산기업 집단 PGZ그룹. K2 전차와 K9 자주포 폴란드 수출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훨씬 전부터 PGZ그룹이 추진하는 방식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전투기 공동개발 제안 역시 폴란드 정부의 공식 입장일 가능성이 높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폴란드는 한국형차기전투기(KFX) 프로그램에 공동 개발국으로 이름만 올렸을 뿐, 분담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지분을 일부 인수해 다목적 전투기 버전인 KF-21 블록 2 개발에 참여하길 희망하고 있다. 성사될 경우 KF-21의 폴란드 수출과 현지 생산까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업계는 물론 유럽 각국이 이 제안의 실현 여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폴란드는 미국의 최첨단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A 32대를 발주해 내년부터 인수할 예정이다. 현용 주력 전투기인 F-16C/D 블록 52+ 모델은 4세대 전투기로 분류되지만, 능동형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탑재하지 않은 F-16 시리즈 중에서는 최상위급 고성능 모델이다. 여기에 FA-50PL 48대가 추가되면 폴란드 공군의 보유 전투기 규모는 128대로 지금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미 5세대 전투기 도입을 앞두고 있고, 시장에 6세대 전투기의 등장이 임박한 마당에 폴란드는 어째서 4.5세대 전투기인 KF-21을 도입하려는 것일까. 여기에는 5~6세대 전투기가 지닌 몇 가지 문제점이 작용하고 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마크 밀리 합참의장(9월 퇴임 예정) 후임으로 지명한 찰스 브라운 미 공군참모총장은 5~6세대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4.5세대 전투기가 왜 필요한지를 단 한마디로 표현한 적이 있다. 바로 “페라리는 주말에나 타는 차다”라는 말이다. 브라운 총장은 F-35와 같은 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슈퍼카인 ‘페라리’에 비유하며 비싸고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는 슈퍼카를 출퇴근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스텔스기는 획득 가격도 비싸지만 한번 뜨고 내릴 때마다 요구되는 정비 비용이나 시간이 비스텔스기에 비해 높기 때문에 모든 군사작전에 스텔스기를 투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지론이다.
통계는 브라운 총장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 준다. 미 회계감사원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F-35 전투기 1시간 비행에 소요되는 총비용은 4만1,986달러. F-22는 무려 8만5,325달러에 달한다. 반면 F-16은 2만6,927달러다. 스텔스기는 스텔스 성능을 유지하기 위한 도료와 부품에 대한 추가 정비 소요가 있기 때문에 정비 시간이 더 길다. 전투기 운용자 입장에서는 적의 고성능 방공망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위험한 임무 혹은 적 5세대 전투기와의 공대공 전투와 같은 고강도 임무가 아닌, 단순 정찰이나 근접항공지원과 같은 저강도 임무에 스텔스기를 투입하길 꺼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4.5세대 전투기를 도입하는 나라가 늘고 있지만, 문제는 ‘적당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환골탈태에 가까운 성능 개량이 이루어진 F-16V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 전투기는 제작사의 공급 능력에 비해 주문량이 너무 밀려 있어 지금 주문하더라도 2028~2030년은 되어야 인수가 가능하다.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은 2017년 차세대 전투기인 F-35 생산에 집중하기 위해 최대 생산 시설인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F-16 조립 라인을 아예 빼고 2019년에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에 F-16 생산 시설을 새로 열었다. 그린빌 시설의 월 최대 생산 능력은 4대에 불과한데, 현재 ‘개량’을 뺀 ‘신조기’ 물량만 160대 이상이 밀려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 가격 상승과 납기 지연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나라가 1990년대 중반 KF-16 전투기를 구매할 때 대당 460억 원 정도였던 F-16 가격은 지난해 불가리아 계약 기준으로 대당 2,100억 원(무장·군수지원 포함)까지 뛰었다.
F-16V 외 다른 메이저급 4.5세대 전투기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F-15EX 전투기는 144대 이상으로 예상되던 미 공군 도입량이 48대로 급감하면서 가격이 크게 상승해 메리트를 잃었다. F/A-18E/F 모델은 2025년 단종과 생산라인 폐쇄가 확정되면서 더는 구할 수 없는 전투기가 됐다. 유럽의 유로파이터 타이푼과 프랑스의 라팔은 최근 수출 사례들을 찾아보면 대당 가격이 2,500억~3,000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전투기이고, 유지비도 비싸 돈 많은 중동 국가들 외에는 거의 수출되지 않은 모델들이다. 제재 대상국인 중국과 러시아 모델을 제외하면 고려할 수 있는 전투기는 스웨덴의 JAS-39E/F 그리펜NG 정도인데, 그리펜NG는 기존 그리펜에서 그리펜NG로 성능을 개량하면서 시장 경쟁력을 완전히 잃었다. 경전투기인 주제에 대당 가격이 상위 체급인 F-16V와 맞먹고, 유지비용도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호환이 되는 기종이면서 미국·유럽의 제재로부터 자유롭고, 성능이 어느 정도 보장되면서 합리적인 가격을 가진 전투기를 찾는 국가들의 시선이 한국에 쏠리게 된 것이다.
비용 부담과 정치적 문제로 F-35를 구매하기 어려운 국가들은 KF-21 블록 2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년부터 양산되는 KF-21 블록 1은 공대공 미사일을 최대 10발 탑재해 공대공 임무에 특화된 모델이고, 2029년부터 양산될 KF-21 블록 2의 하드웨어는 블록 1과 거의 동일하지만 레이더와 소프트웨어 개량을 통해 공대공·공대지·공대함 작전이 모두 가능한 다목적 전투기다. 아직 양산 전이어서 가격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제작사 측은 무장과 군수지원 옵션을 제외한 순수 전투기 가격을 6,000만~6,500만 달러(한화 약 800억~870억 원)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비슷한 체급인 유럽제 전투기들의 반값이다.
KF-21은 애초에 5~5.5세대 전투기로의 진화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기 때문에 F-16이나 유로파이터 타이푼, 라팔과 같은 4.5세대 전투기를 크게 상회하는 성능을 갖고 있다. 레이더 반사 면적이 작아 생존성이 우수하고, 탑재 센서와 무장 역시 세계 최정상급 제품군이 들어간다. 현재 계획 중인 블록 3 모델은 아예 F-35처럼 내부 무장이 가능하고 무인 전투기와 연동이 가능한 5.5세대 이상급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성능이 좋은데 가격도 싼 제품은 안 팔릴 수가 없다.
KF-21 정도의 가격조차 부담된다면 FA-50이라는 대안이 있다. 최근 폴란드와 말레이시아에서 연이어 수주에 성공한 FA-50은 우리 공군의 현용 FA-50과 달리 대대적인 성능 개량을 가한 블록 20 모델이다. 한국산 또는 미국산 AESA 레이더를 선택할 수 있고, 중·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은 물론, JDAM(합동직격탄)과 같은 정밀유도폭탄과 ‘한국형 타우러스’ 등 장거리 타격무장도 탑재된다. 항공전자장비가 완전히 일신됐고, 공중급유까지 가능하지만, 가격은 전투기와 무장·군수지원 옵션을 포함해 700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
FA-50은 이미 대량 양산된 기종이지만, 추가 호재도 있다. 2018년 T-50A를 꺾고 미 공군 차세대 훈련기로 선정된 보잉의 T-7A가 연이은 결함 논란으로 전력화가 계속 지연되면서 그 반사이익을 볼 예정이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시작하는 미 공군 고등전술훈련기사업(ATT, 280대), 미 해군 고등훈련기사업(UJTS, 200대+), 가상적기사업(TSA, 64대)에서 FA-50 사양의 TF-50과 T-50A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미 공군과 해군에서 채택될 경우, FA-50은 ‘미군 제식 장비’라는 프리미엄과 가격 하락이라는 메리트를 동시에 가져갈 수 있다.
최고의 상품이 갖춰졌으니 이제 상업·정치적 세일즈가 뒤따라야 할 차례다. 정부와 업계가 손발을 잘 맞춘다면 한국형 전투기들은 과거 F-16이나 F-5가 누렸던 자유진영의 표준 주력 전투기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