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분기 동안 쌓인 적자액이 44조 원에 달한 한국전력이 추가 자구안을 12일 내놓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남서울본부 등 '팔 수 있는 모든 부동산을 매각'하고 업무추진비 등을 줄여 기존 20조 원에서 추가로 5조6,000억 원을 더 아끼겠다는 게 핵심이다. 같은 날 한국가스공사도 기존 14조 원에서 들이는 돈을 10% 더 줄이는 방안을 발표했다.
한전은 이날 2월 재정건전화 계획에 담긴 20조1,000억 원에서 추가로 5조6,000억 원을 더 늘린 한전 자구책을 발표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는 질타가 이어지자 핵심 자산 매각 카드를 추가로 내놨다.
①수도권 알짜 자산인 여의도 남서울본부를 팔고,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3개 층과 인천 서인천지사 등 10개 사옥은 임대를 추진한다. ②업무추진비 등 경상 경비도 1조2,000억 원 줄인다는 계획이다. ③2급 이상 임직원의 임금 인상분 전액, 3급 직원 임금 인상분의 50%를 반납하되 여당이 요구한 4급 이하 직원 임금 동결은 노조와의 합의를 전제로 '동참을 추진하겠다'고만 밝혔다. ④전력설비 건설 시기‧규모를 조정해 1조3,000억 원을 줄이고 ⑤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사 오는 전력 구입비를 낮춰 2조8,000억 원을 아낀다는 계획도 담았다.
가스공사도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재정 감축 규모를 기존(14조 원)보다 10% 늘린 경영 혁신안을 내놨다. 국내 가스 수급 안정에 직접 영향이 없는 사업비 집행 시기를 늦추거나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 밖에 자회사인 가스기술공사를 포함해 2급 이상 임직원의 올해 임금 인상분을 전부 반납하고 프로농구단 운영비도 20% 삭감하기로 했다.
에너지‧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방안들이 한전과 가스공사의 영업 손실을 메울 수 없을뿐더러 정치권이 추가 자구책을 요구하며 요금 인상 시기만 늦춰 손실을 더 키웠다고 지적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전이 지난해와 올해 1분기 발행한 사채 규모가 하루 평균 1,000억 원으로 매일 이 정도 적자를 내는 셈"이라며 "영업 손실을 자산 매각으로 메운다면 건물이 아니라 한전이 100% 지분을 가진 발전 자회사를 내놔야 가능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영업손실을 즉시 메울 방안은 요금 인상인데 정치권이 장기 대안인 자구책을 자꾸 요구하며 올릴 시기를 늦춰 손실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다.
당장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알짜 자산을 매각하면 에너지 공기업 재정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불황이라 건물을 내놔도 제값 못 받을 게 분명하고, 매각 후 사무실을 빌려 쓰면 장기적으로 한전 재정만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력구입비를 낮춰 비용을 줄이는 방안은 한전 부실을 발전사에 넘기는 '폭탄 돌리기'라는 비판도 있다. 한전이 전력시설 건설을 줄여 비용을 아끼는 방안도 민간이 그만큼 해당 사업을 담당해 전기료만 더 오를 여지가 있다.
박 교수는 "한전의 방만 경영도 비판할 부분이 있지만 최근 적자는 근본적으로 정치권이 인기영합주의로 전기료를 올리지 않은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기료 동결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건 전기를 많이 쓰는 부유층"이라며 "전기료 낮추고 국민들에게 전기 아끼라고 강조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