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4~6월)에 적용될 전기‧가스요금 인상안 발표가 또 늦어지고 있다. 정부가 관련 법이나 규정에도 없는 당정협의를 통해 ①요금을 올릴지 ②얼마나 인상할지를 정하려 하는데 당정협의 일정이 미궁에 빠지면서 인상 폭은 물론 적용 시기도 알 수 없는 상황이 40일 이상 이어지고 있다. 그사이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영업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정부가 요금 인상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정부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전기요금 인상안 논의를 위한 당정협의 일정은 미정인 상태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원래 오늘(11일) 당정협의 직후 전기위원회 등을 거쳐 인상안을 발표하려 했지만 어제 오후 급하게 취소됐다"고 말했다. 당초 당정협의에선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합의한 2분기 전기‧가스요금안을 여당인 국민의힘이 수용하되,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가 내놓은 자구책을 강도 높게 심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전과 가스공사의 자구책이 미진하다고 판단한 일부 의원들이 개최를 반대했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여당은 자구책이 국민을 설득할 만한 수준이라고 판단해야 당정협의를 열 것"이라며 "기재부와 산업부가 합의한 2분기 요금안도 당정협의에서 재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직원 임금을 포함한 추가 대책 마련을 위해 한전, 가스공사 등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한전이 3급 이상 고위직의 임금 동결을 포함한 자구책을 정부에 냈지만 여당은 전날 4급 이하 직원들이 임금 동결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당의 몽니에 대해 일각에선 대통령실의 인사가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은 강경성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을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부 2차관으로 전격 임명했다. 요금 인상에 대한 여론 설득에 실패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주무 부처의 대처가 안일해서 나온 문책성 인사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런 와중에 "여당은 (전기료 인상에) 의견을 줄 수 있지만 큰 방향은 산업부가 결정한다"는 이창양 산업부 장관의 발언이 여당의 심기를 건드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2분기 전기‧가스요금 결정이 늦춰지면서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정 상황은 더 나빠졌다. 가스공사는 이날 1분기(1~3월)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81% 줄었다고 발표했다. 1분기 요금 동결에 민수용(주택용) 누적 미수금은 3조 원이나 늘어 11조6,000억 원을 찍었는데 이자 비용이 급증한 탓이다. 발전용 원료 정산 등으로 가스공사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줄어든 5,884억 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미수금 급증으로 이자 비용이 전년 동기 대비 2,323억 원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1,394억 원에 그쳤다. 한전의 경영 상황은 더 암울하다. 지난해 32조6,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손실을 낸 데 이어 증권사들은 1분기 5~6조 원대 영업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한전의 1분기 실적은 12일 발표된다.
이창양 장관은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내일(12일) 한전이 자구 노력 비상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이어서 조만간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조정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전 사정이 워낙 어려운 만큼 (한전공대) 출연금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출연 계획을 기재부와 협의해서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당정협의에서 요금안이 결정되면 한전 임시 이사회와 한전이 제출한 인상안을 심의·의결하는 법적 기구인 산업부 전기위원회가 잇따라 열린 뒤 산업부 장관의 고시로 요금 인상이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