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세운 것처럼 우뚝 선 붉은색 건물. 앞에서 보면 그림처럼 납작한 평면인가 싶은데 옆으로 돌아가면 두툼한 볼륨을 가진 박스로 바뀐다. 위치에 따라 2차원과 3차원을 오가는, 하나의 거대한 조각품을 연상케 하는 건물은 전시 '건축과 예술적 기질'에 등장한 '메타박스(METABOX)'다. 이 작품은 화가 서용선의 작품 전시를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로, 정의엽 건축가가 설계했다.
서울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디자이너와 예술가 역할을 수행하며 색다른 건축 작품을 선보이는 건축가 3인의 작품을 모았다. 전시관은 '건축가의 관점들'을 대주제로 올해 연말까지 '건축과 예술' '건축과 가구' '건축과 환경' 등 세 차례 연작 전시를 하는데, 이번이 그 첫 번째 순서다.
전시의 중심에는 건축가 국형걸과 정의엽, 그룹 건축가 최페레이라가 있다. 건축과 예술의 접목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건축계에 새로운 관점을 불어넣고 있는 이들이다. 전시에는 세 건축가의 실제 건축 작업 결과뿐 아니라 작업 과정에서 생산된 부산물이 함께 등장했다.
'메타박스' 설계자인 건축가 정의엽은 평면과 입체의 관계를 특유의 해석으로 풀어낸다. 전시에 등장한 메타박스에서 특히 흥미로운 건 건축주인 서용선 화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이미지를 건축물에 그대로 녹여냈다는 점이다. 서 화가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격자 형태의 선으로 만든 공간 이미지를 건축물에 그대로 구현한 것인데 공간과 평면이 묘하게 비틀리는 듯한 건물이 그림 같기도, 조각 같기도 하다.
국형걸 건축가는 전시와 파빌리온, 환경 설치, 건축 등 여러 매체와 분야를 활발하게 오가며 발전시킨 다양한 건축적 실험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솔방울 형상을 닮은 기능성 구조물 '솔라파인(Solar Pine)'이 등장한다. 기존의 단순한 모듈 방식 태양광 구조물에서 벗어나 발전기와 쉼터, 벤치의 기능을 탑재하면서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더했다. 패턴 디자인과 곡선 구조물이 그 자체로 조형물처럼 느껴진다.
그룹 최페레이라(최성희, 로랑 페레이라)는 전시에서 예술과 건축의 융합을 색다른 시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소개했다. 이들의 대표작 장욱진 미술관 건물은 화가 장욱진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와 집의 개념을 모티브로 한다. 하얗고 가벼운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흰색 건물은 장욱진 화백의 화풍을 반영한 듯 산등성이를 따라 심플하게 자리한다. 한국적 추상화를 연상케 하는 이 건물은 지난 2014년 김수근 건축상, 영국 BBC '2014년 위대한 8대 신설 미술관'에 선정돼 주목받았다.
단조로운 건축물에 개성을 불어넣은 건축 작품들은 각각 특색 있지만, 예술과 건축의 경계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술품과 건축물, 어느 쪽으로 불려도 무방한 작품에서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를 넘어 예술적 기획자로 나아가려는 건축가 3인의 분투가 들리는 듯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건축가들의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라며 "건축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 달 18일까지, 관람료는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