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이탈리아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을 최근 관람객이 먹어 치웠다. 바나나 하나를 덕트 테이프로 붙여둔 것인데, 한 남성이 바나나를 먹고 껍질을 다시 테이프로 붙여뒀다. 새 바나나로 교체하면 그만이어서 미술관은 문제를 삼지 않았다. 이 관람객은 바나나 먹는 장면을 지인에게 촬영하도록 해서, 서울대 미학과 재학생임을 밝히고 언론사에 제보했다.
□ 미술관 측엔 “배고파서 먹었다”고 밝혔으나, 이후 인터뷰에서 “카텔란의 작품은 권위에 대한 반항이다. 반항에 대한 또 다른 반항을 해보는 것일 수 있다”며 “껍질을 붙이고 나왔는데 작품을 훼손한 것도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톰 브라운 넥타이를 매고 미리 촬영까지 준비했으니, 당연히 ‘배고파서’ 먹은 건 아니었다. ‘코미디언’은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 첫 전시 때도 행위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가 바나나를 떼어내 먹었다.
□ ‘1억5,000만 원짜리 바나나를 관람객이 먹어 치웠다’는 보도가 많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코미디언’은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며, 개념미술은 관념 자체가 작품이다. 2019년 12만 달러(1억5,000만 원)에 팔린 것은 맞지만, 바나나가 아니라 ‘진품 증서(certificates of authenticity)’가 팔렸다. 진품 증서에는 작품 설치에 대한 정확한 지시 사항이 포함돼 있다. 개념미술에서 진품 증서가 없다면, 물질적 표현과 묘사에 불과할 뿐이라고 한다.
□ 이번 ‘바나나 먹방’은 2019년 사례를 답습한 것이라는 평가절하가 많다. 4년 전엔 비싼 가격에 대한 조롱과 풍자 분위기가 있었고, 당시 작품 훼손이 처음이라 향후 대처에 이목이 집중됐다. 때문에 이번 모방에 대해 “자의식 과잉에 넌더리가 난다”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개념미술 자체가 ‘자의식 놀이’가 아닌가. ‘코미디언’이 미술 시장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하지만, 실은 가격에 그 명성을 기대며 시장에 복종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