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금융 브로커 조모씨는 2016년 5~9월 검찰의 '홈캐스트 주가조작' 수사에서 도우미 역할을 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 최모 검사와 박모 수사관에게 협조해 주가조작 주범 A씨의 자백을 이끌어냈고, 범행수법과 공모관계까지 분석했다. 그러나 A씨가 2016년 9월 "조씨가 검찰 수사자료를 토대로 수사 상황을 떠들고 다닌다"고 진술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검찰의 수사자료 외부 유출 사실이 적발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수사를 주도했던 박 수사관은 조씨 수사로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다. ①A씨로부터 조씨의 알선수재 혐의에 관한 고소장을 제출받아 체포한 뒤 ②조씨 주거지 등에서 유출했던 수사자료를 압수하고 파쇄한 것이다. 하지만 '완전 범행'에는 실패했다. 서울고검이 2017년 11월 조씨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집행절차의 위법성 여부에 대해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박 수사관과 최 검사는 결국 공용서류손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씨는 2020년 4월 "수사권 남용으로 인권 침해를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5,000만 원을 포함한 4억1,0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조씨 측은 "박 수사관이 압수물과 소유 차량 등을 또 다른 수사조력자 등에게 마음대로 줘 3억6,000만 원어치 재산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가 측은 "위법은 없었다"며 맞섰다. 재산 피해에 대해서도 "조씨가 주장하는 물품은 압수한 적이 없으며, 차량을 준 건 알선수재 사건 피해자에 대한 배상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부장 정현석)는 지난달 21일 조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특히 "박 수사관 등은 수사자료 유출을 은폐할 목적으로 형식상 압수·수색 기회를 이용해 최 검사 등에게 불리한 자료를 수거하고 파쇄했다"며 "수사권 남용으로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조씨는 위법 압수·수색으로 압수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돼 방어권을 충실히 행사하기 어려웠고, 사생활의 자유 등도 침해당했다"며 위자료로 2,000만 원을 산정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조씨가 입은 재산 피해 3,420여만 원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조씨 사무실과 주거지에서 압수한 것으로 인정되는 명품 구두와 양복 등 물품은 그 가액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최 검사와 박 수사관이 조씨 주거지에서 서류가방 등을 압수하고도 압수목록 교부서에 기재하지 않아 소재를 파악할 수 없도록 한 건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승용차 등에서 압수한 물품에 대해선 "조씨가 '수사조력자에게 양도한다'는 확인서를 썼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가 조씨 손을 들어준 데는 압수한 수사자료를 파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박 수사관이 2019년 4월 징역형 집행유예를 확정받은 게 결정적이었다. 대법원이 지난해 7월 "위법한 압수수색은 취소돼야 한다"는 조씨의 준항고를 받아준 것도 영향을 미쳤다. ①최 검사 등이 수사자료 유출을 은폐하려고 압수물의 대부분을 누락하는 방법으로 압수목록 교부서를 부실하게 작성했고 ②노트북과 스마트폰은 압수일로부터 10일 이내 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았으며 ③조씨 대신 운전기사를 압수수색에 참여시켜 방어권을 침해하는 등 "어느 모로 보나 위법하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다만 인권 침해의 주체로 최 검사를 적시하진 않았다. 이는 수사자료 파쇄를 박 수사관에게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던 최 검사가 2021년 7월 무죄를 확정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 검사가 수사서류가 유출된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있었던 점 등을 보면 최 검사와 박 수사관 사이에 수사자료 폐기에 대한 상호이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무죄 이유였다.
조씨와 국가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조씨는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9년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다. (관련 기사 : 대박 꿈꾸다… 사기꾼 몰락한 명문대 총학생회장 출신)